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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선거용 개발 공약은 이제 그만

[서초포럼] 선거용 개발 공약은 이제 그만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동남권 신공항 예정지가 김해공항 확장에서 가덕도로 갑자기 바뀌고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관련 자치단체장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자치단체장 선거를 막론하고 선거 때만 되면 개발공약이 난무한다. 개발공약의 백미는 공항 건설이다.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어놓자 지역 국회의원들이 목숨을 걸고 예산을 따서 건설했던 지방공항은 국내선 수요가 급감해 동남아 노선을 긴급히 신설했지만 이용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지방공항은 승객이 없어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공항으로 비난을 받았다. 중심을 잡아야 할 국토부의 입장도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오죽했으면 한 정치평론가가 가덕도 공항 뒤집기를 현대판 고무신 매표행위라고 비난했겠는가.

공항과 항만은 국가의 기간시설이다. 이런 시설은 국가의 경제, 산업 그리고 국토이용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오랜 기간 검토하고 의견을 모아 추진해야 한다. 도시계획 체계상 가장 상위에 있는 계획이 바로 국토종합계획이다. 국토종합계획은 국토기본법에 의한 20년 장기계획으로 2019년 12월 공표된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2040년)에는 분명히 김해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으로 명기돼 있다. 국토종합계획은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분야별 국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참여해 수립한다. 우리나라의 싱크탱크가 총집결해 중지를 모아 만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이 쟁점이 됐을 때 국토부는 공정한 판단을 위해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회사에 사전타당성 조사분석 용역을 맡겼다. 최종보고서는 김해신공항을 1순위로, 가덕도를 꼴찌로 결론 지었다.

국내와 국외 전문가들이 공들여 분석한 결과를 뒤집으려면 국가의 정책목표나 중대한 여건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현 상황은 그렇지 않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을 뿐이다. 과정과 절차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1순위 후보지에 결격사유가 생겼다고 꼴찌 후보지를 최종 후보지로 낙점하기에는 논리와 절차 모두가 흠결투성이이다. 속전속결로 추진하기 위한 특별법도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 정도의 중요 안건은 국회의원은 물론 전문가들도 치열하게 밤새워 찬반토론도 하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홍보도 하고, 여론조사도 거쳐서 결정해야 맞다. 그런데 본회의에서 단 30분 동안 4명의 국회의원 토론을 거쳐 의결됐다.

우리는 서구에 비해 짧은 기간에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빨리빨리 주의'로 국토와 도시를 건설해왔다. 건설 기간을 단축하려다 보니 기본법이나 일반법보다는 특별법이나 촉진법에 의존해왔다. 가덕도 공항의 경우도 국토기본법, 국가재정법, 환경영향평가법 등 관계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절차를 대폭 단축하거나 면제해 추진하게 됐다.

선거 후보들이 내거는 도시개발 관련 공약은 대체로 후보자와 인연이 닿는 몇몇 전문가들이 짧은 기간에 개략적으로 검토해 선거공약으로 내놓게 된다. 제대로 검토하기보다는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공약이 개발될 수밖에 없다.
4년이라는 제한된 임기 내에 이런 사업의 성과를 내려다보니 사전검토, 영향평가, 예비타당성조사 등 절차를 제대로 거치기 어려운 설익은 공약을 내걸 수밖에 없다.

이제 유권자들이 똑똑해져야 한다. 전문가들이 무시당하지 않고, 특별법보다 기본법과 일반법을 중요시하는 공약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지역의 눈앞 이익보다는 국가와 국토 전체의 이익을 볼 줄 아는 지혜로 선거에 임하자.

류중석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도시시스템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