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디지털 시대와 경제 위기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른바 'MZ세대'들의 반란이 재계를 강타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MZ세대들의 성과급 논란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기성 세대들이 주도해온 보상체계 산정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며 객관적인 기준 공개와 함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급 체계 개선은 좋지만, 보상기준이 완전히 공개되는 것은 기업 비밀과 경영자 고유권한 침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기성 세대와 달라 '자기만족 우선'
21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기업들은 MZ 세대 직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성과급 제도 손질에 나섰다. 일각에선 향후 시장상황이 악화될 경우 재정부담이라는 부메랑이 될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선 성과급 논란의 진원지는 SK하이닉스다. 삼성전자의 2020년도 성과급이 자신들의 두 배를 넘자 한 4년 차 직원이 이석희 사장에게 공개 이메일로 성과급 산정방식 공개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같은 움직임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SK텔레콤,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다른 대기업들로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히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것밖에 못 받는지 설명하라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MZ세대'는 1980~2000년대 사이에 출생한 'M세대'와 'Z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였지만 사실은 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주용완 강릉원주대학교 교수는 "MZ세대는 금융 위기, 리먼 및 서브프라임 사태 등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저성장을 겪으며 노력이 꿈을 실현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자기 행복과 만족을 최우선으로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성과급 논란도 자신의 업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불만에서 출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4대 그룹 중 한곳에 3년째 근무중인 A씨는 "개인의 역량보다는 연장자 우대나 친분에 의한 평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평가 지표를 객관화하고 평가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자·금융 업체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B씨도 "대부분 의사 결정권자는 조직원의 객관적 역량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 요소에 따라 성과 평가를 한다"며 "회사의 기업문화와 비전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회사에 대한 인식 차이도 MZ세대와 베이비붐·X세대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다. MZ세대는 조직·집단에 몰입하기보단 개인주의에 기반한 정체성이 깔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경영진 등 기성세대는 조직을 우선시하도록 길들여진 반면, 젊은 세대는 자기 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확연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MZ세대들의 이런 문제의식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인과 잘 안 맞는 조직에서 자리를 잡고 그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과급 폭로'라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며 "'공정하지 않다' '우리 말을 들어달라'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조직에 남고 싶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기준공개, 재무건전성 훼손 지적도
MZ세대들의 이런 움직임에 재계는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달래기에 나서는 등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임직원 보상체계 손질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산정 기준을 기존 '경제적 부가가치'에서 '영업이익' 기반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회사 영업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지급 예상치도 연초와 분기별 시점에 공개키로 했다. 또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혜택이 제공되는 우리사주 제도도 도입키로 했다. 불똥이 번진 SK텔레콤도 노사 합동 태스크포스(TF)를 통해 2022년부터 성과급 지급 기준을 개선키로 했다.
LG전자는 성과급에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최근 사무직 노조를 설립한 가운데, 올해 임금 9% 인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노사가 합의했다.
LG디스플레이도 업계가 최대 호황을 누리던 2010년 이후 최대폭인 기능직 기준의 평균 6.5~7%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최근 직원들과의 미팅에서 직원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도록 체계 개선을 약속했다. 또 재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도 최근 노조를 중심으로 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성과급은 단순히 전년대비 얼마나 벌었는지만 가지고 선정하면 안 된다. 경쟁사 대비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도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라며 "기업마다 시장 상황과 경쟁사의 실적 등을 고려해 자사의 경영성과를 반영해 결정하는 게 성과급인데, 이를 단순화 시키면 오히려 재무 건전성을 훼손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김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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