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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계좌 받은 거래소 빅4뿐… 9월이후 100여곳 ‘퇴출 위기’ [개정 특금법 시행, 가상자산 시장 판이 바뀐다]

<상> 중소 거래소 ‘발등의 불’
6월중 FIU에 신고해야 사업 유지
건전성 공인된 10여곳 불법될 판
은행은 정부 눈치보며 책임 미뤄
객관적 발급요건 서둘러 마련해야

실명계좌 받은 거래소 빅4뿐… 9월이후 100여곳 ‘퇴출 위기’ [개정 특금법 시행, 가상자산 시장 판이 바뀐다]
3월 25일 가상자산 사업자의 정부 신고 의무를 담은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시행된다. 가상자산 거래나 위탁, 결제 등 가상자산과 현금을 연결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등 법이 규정한 요건을 갖춰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없이 사업을 지속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강한 처벌을 받는다. 개정 특금법으로 가상자산 사업을 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정부 신고 절차는 여간 까다운게 아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특금법발 가상자산 시장 재편을 예견한다. 특금법이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개정 특금법 시행으로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오는 6월중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시중은행의 실명계좌 발급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신고 요건 중 하나가 시중은행의 실명계좌 발급인데, 은행들은 좀체 가상자산 거래소들에 추가로 실명계좌를 발급해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존사업자 6월 중 신고 접수해야

21일 금융위원회와 관련업계에 오는 25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특금법에 따라 법률이 정한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AML 시스템을 갖추고 FIU 신고를 마쳐야 합법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기존에 가상자산 사업을 하고 있던 사업자들은 6개월 시행 유예를 적용받아 9월 24일까지 정부의 신고 수리를 받으면 된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면 바로 신고부터 해야 한다. 이와 관련 FIU는 기존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 시기에 대해 "FIU는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서 접수일부터 3개월 이내에 신고 수리여부를 통지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6월 중에는 신고서류를 접수해야 사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고를 접수하기 위해서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시중은행의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실명계좌)가 필요하고, 국제 기준에 맞춰 AML을 위한 내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ISMS는 일반적으로 신청부터 인증까지 6개월 가량 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이미 인증을 받아놓지 않았다면 6월 중 신고 서류 제출 전까지 인증을 받기는 어렵다는게 업계의 진단이다.

■실명계좌 없는 거래소들 발동동

더 큰 문제는 은행의 실명계좌다. 실명계좌는 가상자산과 원화를 연계하는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필수요건인데, 대표 업종이 가상자산 거래소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숫자에 대한 집계는 없다. 업계에서는 100여 곳 정도가 현재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현재 실명계좌를 확보하고 있는 거래소는 업비트(케이뱅크), 빗썸(NH농협은행),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뿐이다. 아직 실명계좌가 없는 거래소는 6월 이전에 실명계좌를 발급해 줄 은행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 실명계좌가 없는 거래소는 신고 접수 자체가 안된다. 신고를 못하면 9월 25일 이후에는 불법 사업자가 된다.

문제는 은행들이 실명계좌를 발급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지 못한 채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최근 비트코인 급등과 해외 대형 은행들의 가상자산 사업 진출 소식을 보며 실명계좌 발급을 통해서라도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가상자산 거래소의 위험거래를 실명계좌 발급 은행이 책임지는 구조여서 실명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손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실명계좌가 없는 거래소들은 개별 은행의 판단에 사업 지속 여부를 맡긴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 중견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 문턱이 닳도록 하루 종일 은행들을 순례하고 있는게 최근 일과"라며 "가상자산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기준에 대해 정부는 은행이 결정할 일이라고 하지만, 은행은 정부 눈치가 보인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견-중소 거래소들 불법사업 위기

현재 ISMS 인증, 자체 AML 시스템 구축 등 정부 신고 요건을 갖추고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에 나서고 있는 중견-중소 거래소들이 족히 10여개는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빗코, 고팍스, 지닥, 텐앤텐, 에이프로빗, 후오비코리아, 플라이빗, 캐셔레스트 등 업계에서도 건전성을 인정받고 있는 거래소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선뜻 실명계좌 발급에 나서지 않으면서 중견 거래소들이 불법 사업자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업계에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전문가는 "모건스탠리, 블랙록 등 초대형 금융회사들이 속속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게 글로벌 추세인데, 국내에서는 그나마 건전한 가상자산 사업자도 불법 딱지를 붙여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를 맞고 있다"며 "4~5개 대형 거래소 중심으로 국내 가상자산 거래 시장이 좁아지면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블록체인·가상자산 같은 신기술 산업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퇴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든 정부든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실명계좌 발급 요건 등 객관적 지표를 제시해 국내 시장 축소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김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