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발매됐다가 잊힌 걸그룹의 곡이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대중에게 소개돼 모든 음원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데뷔한 지 10년, 그사이 이렇다 할 히트곡이나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멤버도 모두 바뀌고 군부대 위문 무대에 주로 섰던 '브레이브걸스'는 발매한 지 4년이 지난 '롤린'으로 역주행 신화를 썼다. 특히 팀 해체 직전에 극적으로 회생한 스토리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울림을 주고 있다.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걸그룹들의 인기가 주로 젊은 층에 국한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팀은 군필 남자들을 포함해 전 연령층이 응원하는 특별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브레이브걸스가 그동안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버티며 성공한 과정은 뮤지컬 음악영화 한편의 소재가 돼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가가 일부러 만들어내려고 해도 쉽지 않을 법한 생생한 드라마가 담겨 있다. 허구의 상황 설정을 만들어 관객에게 콘텐츠로 만들어 파는 사람 입장에서 때로는 이처럼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현실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허구는 없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도 당시에는 맷 데이먼, 기네스 펠트로, 케이트 윈즐릿, 주드 로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정작 신종 전염병과 싸우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같고 극적인 재미도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관객들은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팬데믹을 겪으며 그 영화를 다시 보면서 더더욱 극적인 재미에 몰입하기 어렵게 됐다. 이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작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뮤지컬 '광주'가 만들어져 그 시대의 불행했던 현대사를 돌이켜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41년 전 광주에서처럼 올해 미얀마에서도 기습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장 군인들을 앞세워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유혈 진압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오열하고, 가재도구를 챙겨 피난을 가는 사람이 즐비하다. '광주'는 이제 비극의 역사를 기록하고 픽션을 가미해 예술로 승화시켰지만 지구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유사한 비극이 벌어지며 현실에서 공존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작품 안에서 담고 있는 현실은 허구이며, 일어날 법한 사건이지만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아야 한다. 끔찍한 재난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고 우리 현실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더 아비규환이라서 예술가들이 기껏 구축해놓았던 허구의 세계가 더 이상 흥미를 줄 수 없다면 이제 예술가들은 절필하거나 논픽션 다큐멘터리 작가로 직업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부디 허구를 압도하는 현실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왕이면 브레이브걸스처럼 허구보다 현실이 해피엔딩을 가져다준다면 대환영이다.
조용신 연극 뮤지컬 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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