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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일상으로 회복 능력이 또다른 재난 막는 힘" [인터뷰]

김정희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무총장

포항 지진·강원 산불 등
여전히 체육관서 지내는 분들 있어
일회성·단편 지원의 한계
'회복탄력성' 일컫는 레질리언스
대응·복구단계 강하게 하는 것
이 힘 키워야 재난 피해 최소화
개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안돼
정부·지자체·시민단체 힘모으고
지역사회 취약성 파악해 보완해야

"코로나 이후 일상으로 회복 능력이 또다른 재난 막는 힘" [인터뷰]
김정희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자영업자, 취약계층 등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이번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망브리지 제공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14개월이 지났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국내 확진자는 지난 3월 25일 10만명을 넘어섰다. 연일 500명 안팎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면서 4차 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정부를 비롯해 온 국민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크게 바뀐 현실에 적응하거나 과거 누리던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7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무제한 집행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국민과 기업이 한마음 한뜻으로 내놨던 성금도 고갈되고 있다. 지난 1961년 설립돼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재난재해 구호·모금 전문 민간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김정희 사무총장(58)은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더 중요한 건 이번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6일 서울 신수동 희망브리지에서 김 사무총장을 만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나.

▲심정적으로는 하루빨리 이 위기가 끝나기를 바랐지만, 코로나19는 우리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감염병이다. 신중하게, 길게 보고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국민과 기업은 적극적으로 피해 이웃을 돕지만 그 관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든다. 경북 포항에 지진이 난 게 2017년인데 4년이 지나도록 체육관에서 지내는 분들이 있다. 2019년 강원 산불에서도 마찬가지 경우가 발견된다. 단편적이고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재난재해 피해 지원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이런 일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3월 1차 유행 때 수많은 국민과 기업이 코로나19 극복에 뜻을 모았다. '이 위기를 일소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지만, 희망브리지를 비롯해 여러 모금·구호단체들은 코로나19를 단기간에 종식되기 어려운 장기재난으로 판단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물품을 세심하게 지원하자'고 접근했다. 지난 60년 동안 정부와 발맞춰 재난 피해이웃의 버팀목이 돼 온 희망브리지는 이번에도 관계부처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의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자가격리자, 생활치료센터 입소자, 의료진, 확진자 등에게 맞춤제작한 구호키트를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 발생 초기인 지난해 2월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의 시설에 머물던 중국 우한지역 교민들에게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가장 먼저 지원했고, 올해 1월 교정시설에서 확진자가 속출하자 직원과 재소자에게 간식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 관련 지원물품만 2000만점이 넘는다. 또 한 번에 모든 성금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 재해구호법 입법 취지에 무색하게 각자 모아 각자 배분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재해구호법은 일반 기부금품법과는 다르다.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성금을 모아 집행하면 정치적 의도로 쓰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만든 재난피해자 중심의 특별법이다. 이 법은 지원에 중복, 편중, 누락이 없도록 행안부 훈령으로 지원기준을 명확하게 정해놓고 있다. 태풍이나 수해 같은 재난을 당한 이재민이 지역에 따라 누구는 더 받고 덜 받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형평성'을 중시한 법안이다. 국민성금인 의연금을 한데 모아 법 규정에 따라 지원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화재, 폭발, 감염병, 교통사고와 같은 사회재난 모금액의 분배는 또 다른 문제다. 여러 모금·구호단체가 각자 모금해 각자 지원한다. 강원 고성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면 2018년 산불로 집이 전소된 가구(248만원)와 2019년 같은 전소 피해를 입은 가구(6000만원)의 보상액은 30배까지 차이가 났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회재난도 자연재난처럼 배분을 일원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평소에 우리 사회가 재난재해 '레질리언스'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오셨는데.

▲'레질리언스(Resilience)'는 보통 우리말로 '회복탄력성'으로 풀이된다. 재난재해 분야에서 레질리언스는 재난 발생 후 피해자들이 온전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일컫는다. 일본에선 지진예측 분야에만 1년에 조 단위의 돈을 쓰지만 단 한 번도 지진을 미리 알아챈 적이 없다. '방재(防災)'란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재난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재난 피해에는 예후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보살핌이 중요한데, 지금까지 국내 재난구호는 성금이나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것이 중심이 돼 왔다. 최근 '긴급 구호에서 중장기 구호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란 주장이 대두되는데 중요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장기 구호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오히려 재난 피해자가 스스로 재난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돕자는 의미로, 이때 필요한 힘이 바로 레질리언스다. 쉽게 말하면 '오뚜기 정신'과 같은 것이다. 이 역량이 클수록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재난관리의 기본은 예방→대비→대응→복구인데 이런 단계가 지속적인 선순환을 만들면 재난 극복은 물론 지역 성장까지 일궈낼 수 있다. 다리가 무너져서 다리를 다시 짓는데, 전보다 훨씬 튼튼하고 주민 편의까지 고려해서 넓게 만들었다고 생각해보라. 대응, 복구 단계에서 예방과 대비까지 이뤄지는 것이고, 지역사회 발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겠나. 재난의 경험과 교훈을 살려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회복탄력성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가 지난 메르스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코로나19 방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던 것처럼 말인가.

▲우리나라가 코로나19에 잘 대처했는지를 두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감염병에 대해 회복탄력성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명실상부 재난대응 선진국이다. 지진, 해일 같은 재난 관련 매뉴얼과 훈련시스템도 훌륭하고, 시장에 다양한 구호제품도 다 출시돼 있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회복탄력성은 자연재난에 특화돼 있기 때문인데 그런 경험이 부족하니, 이를 통한 교훈도 축적하지 못한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물론 우리 사회도 부족한 모습을 여러번 보였다. 그런 모습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체계를 만드는 일이 꼭 필요하다.

―당장 고통받는 국민에게 재난으로부터 교훈까지 얻으라는 말은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좋은 지적이다. 국민의 힘만으론 할 수 없다. 회복탄력성 향상을 위해선 주민,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연구기관 등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한다. 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이른바 지역사회의 '취약성'을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지역이나 국가의 상황과 역량이 다르고, 그에 따른 대응 수준도 다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 초기 이탈리아가 큰 피해를 봤는데 고령화율 세계 2위라는 사회 취약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취약성을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지자체와 정부의 재난 대응력, 지역 공동체의 힘, 시민단체의 뒷받침 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좋은 사례가 있나.

▲국내에선 강원 인제군 가리산리와 속초시 영랑동 사례를 꼽을 수 있겠다. 2006년에 큰 수해가 나서 170명의 마을주민 중 8명이 사망했는데 2008년부터 마을과 지자체, 연구자가 협력해 마을의 재난 경험을 방재체험마을만들기 활동으로 승화시켰다. 마을주민들이 하천 도하훈련, 심폐소생술, 대피가방 꾸리기 같은 교육 및 체험 훈련을 직접 계획하고 준비했다. 주민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강사로 나서다 보니 자연히 재난대응 역량이 생기고, 체험학습 행렬이 늘면서 마을도 활성화됐다. 지역사회의 힘과 협동체계, 즉 지역의 회복탄력성이 만든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서울 시내버스에는 '착한 탐정이 되어주세요'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웃집에 고지서가 쌓여 있다거나 이웃이 오랜 기간 보이지 않는다면 서울시에 연락해달라는 내용이다. 이런 것도 지역 공동체를 되살려 레질리언스를 갖추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