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 '언어 깃털' 전시 전경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하얗디 하얀 전시장 바닥에는 끝이 둥글게 말린 색종이 조각 같은 금속 오브제가 이리저리 떨어져 있다. 벽에 걸린 원고지들 안에는 빨갛고 파랗고, 검고, 회색 빛의 원들이 띄엄 띄엄 채워져 있기도 하고 마치 구겨진 백지 노트와 같은 금속 오브제가 걸려있다. 그저 바라보면 희미한데 사실 이 공간은 수많은 말들과 새소리, 악기의 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콘서트 리허설장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어쩔 수 없이 고막에 맺힌 소리들을 인식하려 애써보게 되지만 좀처럼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수많은 소리들은 결국 대양 너머에 서있는 것 처럼 우리의 마음을 멀어지게 만든다.
박주연 '언어 깃털' 전시 전경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도산대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중인 개인전 '언어 깃털'을 진행중인 박주연 작가는 청소년기 타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언어에 대한 생각들을 이번 전시에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서 언어는 타인과 상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도구이자 지식을 담아내는 결과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고 이해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억압의 장치였다. 뜻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외국어들이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갈라놓고 낯설게 만들면서 타인에게 오해받지 않기 위해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았던 시절을 돌아보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크의 이야기 중 나이팅게일의 깃털과 목소리에 관한 일화와 그리스 신화 중 하나인 '에코'에 대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작품들을 구상했다. 작가는 원으로만 남은 글씨의 흔적들을 통해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끔 한다. 전시는 6월 6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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