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베리:주소 불명인 자는 모조리 체포해야 해…거기 섯! 하고 명령하란 말야. (그래도 서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그거야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거지.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에 등장하는 바보스러운 경관 도그베리는 야경꾼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부하가, 수상한 자를 체포하려 하는데 그자가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너희는 야경꾼이니 수상한 사람을 붙잡느라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고, 경비만 적당히 서면 된다고 대답한다. 도그베리를 비롯한 야경꾼들이 매우 단순하며 소명의식도 없음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이런 경관들이 과연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은 클로디오와 히어로, 베네딕과 베아트리체 등 두 쌍의 젊은 남녀가 온갖 소동 끝에 사랑과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결혼을 앞둔 클로디오와 히어로의 행복을 아무런 이유 없이 훼방 놓으려고 돈 존이라는 자가 간계를 꾸며 히어로를 부정한 여성으로 보이게 하여 결혼을 파국으로 이끈다. 하지만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신부 프랜시스의 도움과 그동안 어설프기만 하다고 여겨지던 경관 도그베리의 업무 수행이 우연히 결실을 보아 음모의 진상이 밝혀진다. 결국 모두 행복하게 결혼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그처럼 우둔한 사람도 가끔은 훌륭한 일을 해내곤 해"라는 말이 어울리게 별 볼 일 없는 도그베리가 이 거짓말 소동을 바로잡는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고관대작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한다. 도그베리와 야경꾼들은 횡설수설하며 별생각 없는 행동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나름대로 진지하고 열심이기에 이 작품의 열쇠를 푸는 역할을 한다.
도그베리는 정말 바보(ass)인지 모른다. 하지만 현명한 체하는 귀족들은 어떠한가. 이 작품의 제목 '헛소동'이 암시하듯 그들은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소동을 벌이지만, 그 결과는 그들의 의도와 전혀 다르다. 제목의 '소동'이 암시하듯, 인간은 모두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야단법석만 피우는 어릿광대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잘난 체하고 까부는 우리 인간의 모든 일들이 헛된 소동이며, 그 스토리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이 사건의 결말은 어느 누구도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소동을 벌인 것에 불과하며 가장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던 도그베리가 실체를 밝혀내지 않는가.
삶은 무언가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그 의미를 둬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필요에 따라 실제를 꾸미고, 술수를 부리는 세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에서나 요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의 경우 친구의 사랑을 이루게 해주려고 꾸며내는 선의의 거짓말과 남의 행복한 결혼을 훼방 놓으려 꾸며내는 악의적 거짓말이 빚어낸 소용돌이가 헛소동만 일으키는 데 반해, 아무런 개인적 이해관계도 없는 도그베리 일당의 솔직한 자세가 빚어낸 결과가 정말 가치 있음을 보여준다. 세련되지 못했으나 인간으로서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는 꾸밈없는 진지함이야말로 술수가 난무하는 각박한 이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소중한 덕목이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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