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신스틸러 김헌곤 /사진=뉴시스
희생번트와 런앤히트의 목적은 동일하다.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서다. 희생번트는 아웃카운트 하나와 진루를 맞바꾼다. 런앤히트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잘 못되면 주자와 타자 모두를 죽인다. 잘 풀리면 아웃카운트 소진 없이 둘 다 살린다.
감독이 희생번트나 런앤히트 작전을 거는 이유는 타자의 안타 확률을 낮게 보기 때문이다. 타자의 성적 관리엔 불리한 조건들이다. 7회말 한 점 차로 뒤져있는 상황서 선두타자가 출루했다. 타순은 8번 김헌곤(33·삼성). 감독은 희생번트나 히트앤드런을 먼저 떠올린다.
1루 주자의 발이 빠르면 런앤히트. 마침 삼성의 1루 주자는 도루왕 출신 박해민이었다. 방향은 정해졌다. LG 투수는 홀드왕 출신 정우영. 두 번이나 런앤히트가 걸렸다. 그때마다 파울. 보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피 말리는 승부가 이어졌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1위(삼성)와 3위(LG) 팀 간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까지만 해도 LG 1위, 삼성 2위였다. 28일 삼성과 LG는 순위를 맞바꾸었다. 다음날 순위는 또 바뀌었다. 이번엔 LG 1위, 삼성 2위.
두 팀은 무대를 대구로 옮겨 주말 3연전을 치르게 됐다. 첫날 삼성이 이겨 다시 1위로 올라섰다. 다음날 삼성이 내리 이겼다. LG는 3위로 떨어졌다.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3연패면 급정거다.
LG는 2일 총력전으로 나섰다. 경기는 엎치락뒤치락. 두 번의 동점과 역전, 재역전 끝에 7회초 현재 LG가 4-3으로 앞섰다. 선두타자 박해민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발빠른 주자를 1루에 두면 배터리는 물론 내야 전체가 흔들거린다.
박해민이 2루를 훔쳤다. 이젠 3루가 목표였다. 무사 또는 1사 3루면 목표인 동점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동점이면 흐름상 역전이 점쳐졌다. 하지만 정우영의 공은 오른손 타자에겐 여간 까다롭지 않다.
볼카운트는 3-2. 이미 희생번트 상황은 아니다. 김헌곤은 스트라이크존 근처의 공을 두 차례 커트해냈다. 끈질긴 승부근성이었다. 김헌곤은 이날 막 2군에서 올라왔다. 타격 부진으로 내려간 김동엽의 빈자리를 대신 메웠다.
정우영은 투심을 잘 던진다. 공끝의 변화가 심하다. 김헌곤은 기어코 1루 땅볼을 만들어냈다. 어떡하든 밀어쳐서 2루 주자를 3루로 보내겠다는 의도가 확연했다. 8구째 긴 승부였다. 결국 삼성은 1사 3루서 스퀴즈로 동점에 성공했다.
김헌곤의 악착같은 진루타는 삼성 선수들을 자극했다. 더그아웃에서 보고 있으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저 선수가 죽어라 하고 있구나.’ 하나가 그러면 전체 선수의 눈빛이 달라진다. 전쟁터에서 전우 한 명의 용감한 행동이 전체의 사기를 좌지우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성은 지난해 8위에 그친 팀이다. 올시즌 깜짝 1위에 오른 이유는 외국인 타자 피렐라(타율 0.356, 홈런 9개)와 토종 평균자책점 1위 원태인(1.16), 팔방미인 안방마님 강민호(타율 0.393) 등 주역들의 활약 덕분이다.
그러나 2일 LG전서 보듯 김헌곤 같은 신스틸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넘버 3’에서 가장 기억나는 배우는 송강호였고 ‘타짜’에선 김윤석이었다. 삼성이 올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면 2일 경기 신스틸러 김헌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