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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이준석 돌풍을 살려야 보수가 산다

[서초포럼] 이준석 돌풍을 살려야 보수가 산다
'돈과 권력을 중시하며 엘리트주의를 가지고 있는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의 50대 후반~70대 꼰대 남성'. 민주당이 작성한 '재보궐 이후 정치지형 변화 분석을 위한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국민의힘의 이미지를 의인화한 내용이다. 대단히 부정적이지만 '국민의힘'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빨강과 함께 '부패·비리'가 꼽혔으니 섭섭해할 일은 아니다. '독단적이며, 말만 잘하고 겉과 속이 다른, 성과 없는 무능한 40~50대 남성'이라는 민주당과 비교해도 국민의힘이 크게 손해 본 것 같지는 않다. 보고서에서도 나온 것처럼 정당의 이미지 형성에 주로 기여하는 것은 역시 두드러진 인물들이다. 국민의힘에서 연상되는 인물로 꼽힌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홍준표 전 대표,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자기 할 말만 하는, 소통이 안 되는' '꼰대 느낌'과 '부패·비리'라는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내로남불, 무능하다, 거짓말, 성추행·성추문 등 민주당의 연상 이미지 역시 조국 사태, 박원순·오거돈 사태를 거치며 국민의 뇌리에 각인된 단어들이다.

민주당 보고서가 새삼 확인한 것은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당이 2030 세대에게 매력 없는 정당이라는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가뜩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이 '50~70대 꼰대 남성' 이미지가 고착화된 정당에 눈길을 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스타 정치인 등 관심을 가질 대상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준석 현상은 그런 점에서도 보수 정당, 보수 진영에 긴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존재다. 보수 정당의 당 대표 경선이 이처럼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던가.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맞붙은 경선은 대통령 후보를 뽑는 행사로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 후보와 함께 대표 경선에 나섰던 김웅, 김은혜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에 출마한 조수진, 배현진 의원 등도 보수당 신예 돌풍의 주역들이다. 냄새 나는 고인물에서 젊은이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놀이터가 된 셈이다. 이준석과 신진들의 돌풍이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후보를 비롯한 신예들은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존 정치인들의 엄중, 신중 태도와는 딴판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발언들도 나온다. 정치적 세대교체 요구는 긍정적이지만 내년 대선 등을 관리할 역량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보수당은 곧 공중분해될지 모른다." 2005년 제프리 위트크로프트가 '영국 보수주의의 이상한 종말'이란 책에 쓴 도발적 언사이다. 1997년 총선 패배 이후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신 보수당은 만년야당으로 해체 위기에 직면한 듯했다. 하지만 같은 해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보수당 대표가 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정부는 절대악이고 시장은 절대선'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겠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조화시켜 나가며 소외계층의 이익을 보호해 주기 위한 정책들을 제시하겠다." 기존 보수당과 결별한 캐머런이 과감한 혁신을 통해 2010년 44세의 나이로 집권당 총리가 된 사실은 잘 알려진 대로다.

이준석 대표가 된다거나,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표로서 국민의힘을 혁신해 재집권의 길로 이끈다는 보장도 없다.
문제의 핵심은 중진, 신예 모두 현재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사용해야만 보수가 살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당내 경선에 대한 집착만으로 상대 공격에 치중하다 보면 다시 한번 익숙한 자멸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돌풍이 태풍으로 변할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지 여부는 지금부터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하기에 달렸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