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상징물 중 하나인 에펠탑은 파리를 세계적인 명소로 이름나게 한 지리적표시제의 대표적 예다. 하지만 탑을 만든 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에펠탑은 당시의 재상이나 정치가가 만든 것이 아니고 프랑스의 토목기사인 귀스타브 에펠이 만들었다. 1889년 탑을 만들고 나서 그는 '철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에펠탑은 이후 역학의 실험장이 되곤 했다.
해외에서 과학자들이 받는 예우와 풍토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세계적인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백신과 감염병 연구에 헌신해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탄생했고, 세계적 연구소로 성장했다. 유럽연합(EU) 이전 시대 유럽 18개국의 지폐 중 24%가 과학자의 얼굴을 넣었다.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뉴턴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도 과학자에 대한 예우는 극진하다.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 췐세썬 박사는 98세 사망 시까지 중국 국가주석의 새해 인사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1000엔짜리 지폐에는 의학자 노구치 히데요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 국가과학기술유공자에 대한민국 최초 미니컴퓨터 '세종 1호' 개발의 주역인 고 안병성 박사가 정보통신기술(ICT)계에선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가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됨은 개인에겐 명예로운 일이다. 기관으로서도 자랑스럽고 후배들의 표본이 되어 과학기술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과학기술인에게 조금은 관대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세계 1등 국가라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 이면에 과학기술자의 공헌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역설도 공존한다. 아마도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까지 과학기술자에 대해선 그리 존중하지 않는 영향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우주통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고 최순달 박사님, 필자는 그를 '인공위성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전길남 박사님, 그를 우리나라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 CDMA를 개발, 우리나라를 휴대폰 강국으로 만드는 데 정열을 쏟으신 이헌 선배님을 '디지털 이동통신 교환기 시스템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 건물, 화폐, 도로명, 무엇이든, 과학자의 이름을 새겨 널리 기리는 일은 큰 영광이고 후배, 청소년,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는 본받을 거리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10위의 경제 선진국이 됐다. 우리만의 생각을 꺼내 창의성을 깨우쳐 세계 최초, 최고의 기술을 개발해야 글로벌 선두집단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선배 과학기술자들이 닦아온 길을 기리는 것은 후배 과학기술자의 동기부여에도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생활의 편의, 안전, 국방 등과 관련된 연구성과를 널리 알려 과학기술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전환해야 할 때다.
교육 과정에서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학습방법을 바꾸어 가고, 이공계 기피나 뿌리 깊게 박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풍토 등을 개선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우리나라 선배 과학기술자의 과거를 되새기고 국보급 과학기술유공자 발굴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자. 앞으로 제2, 제3의 국보급 과학기술자들을 배출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자의 명예를 존중해 주고, 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자. 이것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지름길이 돼줄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과학기술강국으로 도약시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도록 힘써 주신 과학기술자 선배들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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