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었다. 불볕더위로 장기간 이어진 폭염 때문만은 아니다. 올림픽의 열기가 더해진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19로 인해 지연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그리 높았던 것도, 우리나라의 성적이 엄청났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금메달 7개, 종합순위 10위'라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뉴스가 올림픽 폐막을 장식했다. 물론 여자 양궁 단체전의 9연패 신화나 메달리스트들의 성과는 대단하다. 과거와 다른 점은 우리 국민이 메달에만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의'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 큰 박수를 보내고 올림픽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경기를 즐기는 선진 국민의식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특히 관심을 끈 종목은 여자배구였다. 세계랭킹 13위의 한국이 세계 5위 일본과 4위인 터키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아쉽게도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국민적 응원을 받은 '졌잘싸'의 대표 사례다. 세계적 기량을 갖춘 김연경 선수를 보유했지만 불과 얼마 전 일부 주전 선수의 이탈로 어수선한 터라 성적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한 팀으로 뭉친 선수들의 노력에 국민은 응원으로 화답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기대만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던 박정아 선수의 활약에도 큰 박수가 쏟아졌다. "'리우 욕받이'에서 '클러치 박'으로"라는 기사 제목은 이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박정아 선수는 신체조건이나 기량 면에서 2016년에도 이미 국내에서는 우수한 선수였다. 속된 말로 국내 대회에서는 잘 통하는 선수였지만 월등한 체격조건을 갖춘 외국 대표팀과 경기에서는 먹히지 않는 국내용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물론 국내에도 외국인 선수를 용병으로 활용하는 제도가 있다. 국내 팬들의 관심과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반면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몰빵 배구'와 그로 인해 토종 선수 육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도 있다. 제도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내에서의 경쟁력과 글로벌 경쟁력의 차이. 이는 비단 운동선수 한 명이나 여자배구 한 종목 또는 체육 분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세계경제 환경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국내 복귀를 유인하는 리쇼어링 정책과 함께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구축하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래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K-뉴딜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건은 무엇보다 정책과 제도의 조화이다. 국내 산업을 키우는 정책과 함께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 국내 일자리 창출과 시너지 효과를 노려야 한다. 외국인 선수제도처럼 외국인 투자도 양면의 날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최대한 살리고 부정적인 측면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활용한다면 국내 기반의 공급망과 시장의 글로벌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투자(FDI)가 역대 2위의 실적을 기록했다.
좋은 소식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글로벌 혁신과 핵심 공급망의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기업에 더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대회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치열하다는 양궁이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단체전 9연패의 신화를 이루고 5개 중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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