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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에 빠진 나를 구한 그의 한마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Guideposts]

그분 안에서 조슬린 제임스 에드먼즈
나는 이혼하고 수차례 암 수술·재발로
꿈도 잃고 마약에 빠져 지내다 체포됐다.
경멸하던 다른 경찰관과 달리 테렐 포터는
내가 갖지 못한 희망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포터를 도울 순간이 왔다.
경관 은퇴 후 신장이식을 기다리던 그.
"당신에게 나의 신장을 줄게요"
하나님께서 되살린 몸을
사랑의 손길로 베풀 수 있어 행복하다.

약물에 빠진 나를 구한 그의 한마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Guideposts]
약물 남용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조슬린 제임스 에드먼즈는 그를 친절과 연민으로 대하던 한 경찰관의 배려로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른쪽이 그녀를 친절로 대했던 경찰관 테렐 포터다.
약물에 빠진 나를 구한 그의 한마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Guideposts]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늦은 시각이었다. 친구의 온라인 선물가게에서 일하는 데 몇 시간을 더 쏟았다. 추수감사절이 몇 주 앞이었고, 2019년 시즌을 맞아 연말연시 주문이 이미 쌓이고 있었다. 나는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을 위한 중독 회복 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다른 일을 더 하며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모든 노고가 결국에는 보답받으리라고 확신하지만, '주님, 저는 피곤하답니다.'

휴대폰에서 페이스북 앱을 열었다. 내게 빠르게 활력이 되어주는 친구와 가족의 미소짓는 사진을 스크롤하며 보기를 바랐다. 하지만 처음 뜬 건 고등학교 시절 좋은 친구였던 미스티의 여동생 에이프릴 포터 홀레만이 올린 글이었다. "저희 아빠에게 새 신장이 필요해요."

미스티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아버지 테렐 포터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우리 동네 경찰서의 경관이었다.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온전한 꼴을 갖춘 문장이 마음에 떠올랐다. "하나님, 제게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나는 마흔이 가까웠고 키워야 할 10대 아이가 둘이었다. 중독 치료 중인 여성 92명을 챙기느라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내 명단에 다른 사람을 추가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나처럼 몸을 마구잡이로 대했다가 지금은 회복 중인 중독자의 신장을 누가 원하겠는가. 포터씨처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분명 원치 않을 터였다. 그를 잘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딸과 어울리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았다.

내가 갈망하는 그런 삶이었다. 나는 2007년에 처방전이 필요한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됐다. 그때는 좋은 집과 이동식 주택 공장의 전기기사라는 괜찮은 직업이 있었다. 나와 아이들의 아빠는 이혼했지만 그는 아이들의 생활에 함께했고, 아빠 없이 자란 나는 그 점이 고마웠다. 그 무렵 난소에서 암세포를 제거하려고 6차례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통증 때문에 의사가 처방전을 써 주었다. 암세포는 계속 재발했다. 결국 자궁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로 나는 충격에 빠졌다. 언젠가 아이를 더 가지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됐다. 자존감과 여성성의 토대가 되는 부분을 상실했다. 하자 상품 같은 기분이었다. 의사가 처방을 끊자 직장 사람들한테서 약을 샀고, 그다음에는 거리의 마약 판매상한테서 구했다. 상태는 급속히 악화됐다. 직업, 차, 친구들을 잃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약에 취하는 것 말고는.

그 후 몇 년 동안 규칙적으로 반복된 한 가지는 동네 경찰서였다. 2007년 규제약물 소지로 처음 체포됐다. 그 후 5년 동안 15번 더 체포됐다.

경찰관이 조서를 작성할 때면 악을 썼다. "당신은 내 삶을 망치려 드는군요. 내가 곤란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2009년에는 장물 소지와 신용카드 부정사용으로 체포됐다. 경찰관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테렐 포터였다. 그의 집에 가본 적도, 그의 식탁에서 밥을 먹은 적도, 그의 딸과 함께 웃은 적도 있었다.

"너희는 돼지 떼야. 나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고!" 순찰차에 엎드린 채로 수갑이 채워질 때, 나는 사납게 외쳐댔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내게 경멸하는 투로 말했고, 하찮은 존재로 대했다. 하지만 테렐 포터는 나를 몇 번이나 체포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날 존중했다. 우리 엄마나 아이들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중독으로 몽롱한 와중에도 그의 눈에서는 무언가 다른 것이 보였다. 다른 경찰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날 보는 방식과 달랐다. 친절, 연민, 희망이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희망이었다.

2012년 11월 즈음에는 집까지 잃고 전남편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밤, 지역뉴스를 보는데 내 얼굴이 나타났다. 그 아래에는 '앨라배마의 지명수배자'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있었다. 신문에는 수없이 났지만 어쨌든 나 자신을 텔레비전에서 본 건 큰 충격이었다.

"엄마, 저거 과속 딱지 때문이에요?" 딸이 물었다.

'이제 그만. 이렇게 사는 건 이제 끝이야. 아이들에게 더는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 자수했다. 아이들은 전남편이나 우리 엄마와 지내는 편이 나았다. 나는 대단한 엄마가 되어 주지 못했다. 재활원으로 곧장 보내질 줄 알았다. 그 대신 프랭클린 카운티 교도소에서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약중독 치료를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때때로 교도소 목회 소속의 쿠퍼가 여자 재소자들에게 이야기하려고 찾아왔다.

"우리 몸은 성령의 성전이에요. 고린도서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조심스럽게 다루라고 일러주죠."

기도 모임에는 들지 않았지만, 침상에서 귀를 기울였다. 이들이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쿠퍼가 그들을 사랑하고 아끼며 판단하지 않는 걸 들었다. 그 덕분에 우주에 선한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재활센터로 옮겼다. 중독은 굶주린 짐승처럼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마약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없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냉엄한 선택을 고려해 볼 때 나는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듯했다.

"포기할래요. 내 방식대로 이겨보려고 했지만 못하겠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됐어요."

2013년 4월의 어느 날, 재활센터의 상담 직원에게 얘기했다.

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필사적이었고 나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무턱대고 닿으려 했으나, 갑자기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머리가 맑아졌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조슬린이 무엇을 하길 바란다고 생각하세요?"

몸을 조심스레 대하라고 설교하던 쿠퍼가 떠올랐다. "약을 끊는 거요."

그해 8월에 재활원을 나와 엄마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면허도, 차도, 직업도 없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날 중독에서 구원해 주셨으니까. 나 자신을 돌보고, 우리 아이들에게 마땅한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우는 데 전념했다. 냉철하게 생각했다. 되돌아가는 길은 날 여기까지 끌고온 길만큼이나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하나님께서 계셨다.

다른 여성들이 마약을 끊도록 도움을 주는 데서 새로운 열정을 찾았다. 10월께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중독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절 보세요. 11개월 전에는 꼭 당신과 같았어요. 같이 재활하러 가요."

그 후 몇 년에 걸쳐 하루에 한 번씩 내 아이들과 관계를 쌓았다. 판사 및 검사와 함께 일했다. 일요일과 크리스마스에는 프랭클린 카운티 교도소의 여자들을 위해 목회 활동을 했다.

이제 성령은 내게 테렐 포터의 신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난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 주 내내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진심이시라는 계시를 기다렸다. 금요일 아침, 내 눈이 마태복음을 향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에이프릴 포터 홀레만에게 전화했다. "조슬린 제임스예요. 고등학교 때 당신 언니의 친구였죠."

에이프릴은 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으며 내가 불쑥 말을 내뱉었을 땐 훨씬 더 놀랐다. "나한테 당신 아버지의 신장이 있어요.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에이프릴과 그 가족은 충격에서 벗어난 뒤, 내슈빌에 있는 밴더빌트대학교 의료원으로 날 보내서 검사받게 했다. 12월 5일에 장기이식 전문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좋은 소식이에요. 당신과 아버지는 일치합니다." "그분은 제 아빠가 아니에요." 간호사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적합도는 완벽했다.

테렐과 그의 아내가 날 집으로 초대했다. "내게 신장을 줄지도 모를 100명을 적어 보라고 했다면, 네 이름은 명단에 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테렐이 말했다. 포터 가족은 굉장히 독실했기에 내 일부를 기증하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꼭 맞는 신장을 찾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렸지. 조슬린, 네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렸어. 고맙구나."

어리둥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약물남용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내 몸이 여전히 귀하다는 것, 꼭 맞는 신장을 기증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소중하고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다.

테렐의 시선이 내 눈길에 닿았다. 중독의 심연에 빠져 있던 날 체포했을 때와 꼭 같은 친절과 연민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이제야 테렐이 내게 말하려던 바를 이해했다.

'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이란다. 너도 구원받을 수 있어.'

2020년 7월 21일, 테렐과 나는 밴더빌트 의료원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수술 준비를 했다. 그의 가족, 나의 가족, 내 모든 직장 상사가 왔다. 6시간 후 내 신장은 테렐의 것이 되었다.

이제 포터네와 나는 한 가족이다. 우리는 그룹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으며, 나는 테렐에게 매일 이야기한다. 그 집 정문을 걸어 들어가며 노크도 하지 않을 정도다. "너니, 조슬린?" 내가 냉장고를 뒤지는 소리를 들으면 테렐이 묻는다. "다이어트 콜라 가지러요." 아빠 없이 자란 사람으로서 내 삶에 테렐이 있다는 건 세상 전부와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다는 걸 알지만, 속세의 아버지 같은 존재도 그렇다는 점에 감사드린다.

내가 마구잡이로 대하던 몸을 하나님께서 되살리신 덕분에 테렐을 도울 수 있었고, 그분께서 내 영혼까지 다시 일으켜 나를 속속들이 새롭게 만들어주신 것을 생각하면 겸허해진다.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테렐이 내게 베풀었던 것을 나도 보여주려고 애쓴다. 바로 그들도 하나님의 아이들이며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 말이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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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