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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충신 켄트와 광대

[서초포럼] 충신 켄트와 광대
폐하의 위엄을 보존하소서. 그리고 폐하의 사려 깊은 통찰로 이 끔찍한 경솔함을 깨우치소서.('리어왕')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은 80대의 리어왕이 왕국을 삼등분하여 세 딸에게 나눠 준 후 여생을 편히 보내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맹세를 강요받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오로지 아버지 리어만을 사랑한다고 아부를 하지만, 막내딸 코딜리어는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사랑할 뿐이라고 정직하게 답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어요, Nothing." 이러한 막내딸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왕은 그녀의 상속권을 박탈해버린다. 여러 신하들 앞에서 아부하는 딸들의 모습을 기대했던 늙은 아버지는 실망을 넘어 충격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만다.

위의 대사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누려온 노왕(老王)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목격한 충신 켄트 백작이 왕의 어리석은 행동을 중단시키려 토로하는 직언이다. 왕에게 결정을 번복하라는 켄트의 간언은 참모로서 리더의 파국적 결정을 마주할 때 지녀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그의 방법이 과연 옳았을까. 그는 왕을 직시하며 '폐하는 악행을 범하고 있나이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물론 켄트가 리어왕의 어리석음을 중단시키려 한 행동은 옳았다. 그렇지만 왕을 좀 더 배려하며 취할 수 있는 대안은 없었을까.

반면 이 작품에는 리어의 어리석음을 은근한 방식으로 일깨워주는 현명한 바보 광대가 등장한다. "아첨쟁이 암캐 마님께서는 난롯불 앞에서 구린내를 풍겨도, 진리의 개는 매를 맞고 바깥으로 내쫓기는 세상이네요." 직언을 퍼붓는 켄트와 달리 광대는 알 듯 말 듯한 간접적 표현을 통해 리어의 실수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왕을 위로해주고 공감하며 같이 아파한다. 역설적 표현, 뼈 있는 농담, 재치 있는 말 등을 통해 리어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준다. 리어의 심적 고통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는 광대의 태도는 켄트의 방식과 확연히 대비된다.

켄트의 충성심이야말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매우 초보적이고, 일차원적이며, 비효율적이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켄트의 직언은 리어왕으로 하여금 켄트가 그를 위해 간언한다고 생각지 않고 그와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불충의 신하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참모의 책무는 리더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그의 생각을 넓혀주어 성공하도록 보좌하는 것이다. 리더는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참모로부터 조언을 받을 때 더욱 현명해질 수 있다. 리더와 참모 사이에는 서로의 관계나 기타 고려해야 할 상황이나 여건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최적의 시기에 최적의 방식으로 조언해야 하는 지혜도 참모의 중요한 자질이다.


켄트는 왕으로부터 버림받은 후에도 하인으로 변장, 시종일관 왕을 보필하는 충신이다. 광대는 이와 다른 차원에서 리어가 겪는 시련에 동참해 리어에게 마음의 틈새를 만들어주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한다. 리더는, 리어왕과는 달리,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옥석을 가려내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