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이번 추석도 비대면이다. 조용히 '집콕'하는 수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 이러니 명절이 다가와도 도무지 흥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끼리 전 부치고, 잡채도 해서 추석 흉내라도 내보자"는 아내의 제안이다. 아직 추석이 보름이나 남았지만 마음은 이미 스무 걸음쯤 앞서간다. 성격 급한 우리 세 식구는 "재료 준비가 우선"이라며 당장 O마트로 향했다.
"CJ(제일제당)에서 나온 것들만 해도 간단한 차례상은 너끈히 차리겠다." 마트를 둘러보던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동그랑땡부터 잡채, 만두, 비빔밥, 생선구이 등 한 마디로 없는 게 없다.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아내에겐 CJ가 구세주나 마찬가지다.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보이는 대로, 내키는 대로 주워 담으면 된다. 주의할 점은 종류별로 두 개씩은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으면 하나로는 무척 아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반찬도, 햄버거도 OK’ 도톰동그랑땡
마마트에서 돌아오니 벌써 저녁시간이다. "모든 음식은 신선할 때 제일 맛있다"는 철학에 따라 (냉동식품이지만)'비비고 도톰동그랑땡'을 하나 뜯는다. 그러면서 "음식은 정성이야. 차례상에 올리기 전에 맛이 괜찮은지, 어떤지 먹어봐야지"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눈치 빠른 아내는 "핑계가 좋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프라이팬을 전기쿡탑에 올린다.
한 봉지에 20여개가 들었다. 한꺼번에 다 먹기는 아깝다. 동그랑땡으로 미니 햄버거<사진>를 만들어 먹었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이 생각나 슬며시 6개를 따로 빼놨다. 내일 아침에 미니 햄버거에 도전해볼 요량이다.
정말로 '도톰동그랑땡'은 훌륭한 밥 반찬이다. 부드러운 식감에 육즙이 흘러 나온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게 간도 적당하다. 밥 한 숟갈에 하나씩 먹어도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 양파, 당근, 부추 같은 야채가 듬뿍 박혀 있어 고기완자나 떡갈비를 먹을 때보다 내 몸에 덜 미안하다. 아내가 다른 반찬을 꺼내기도 전에 밥 한 그릇 순삭했다.
이�z날은 아침부터 주방이 시끌시끌하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아이가 협업으로 미니 햄버거를 제작하고 있다. 딸아이는 모닝빵을 반으로 잘라 마요네즈와 케첩을 바른다. 아내는 양파와 토마토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있다. 프라이팬에는 어제 남겨놓은 동그랑땡 6개가 누워 있다. 아내가 양상추를 보며 내게 눈짓을 보낸다. '손질하라'는 의미다. 재료를 다 조합하니 작은 덩치의 모닝빵이 터질 것만 같다. 그래도 제법 햄버거 비슷한 모양이 나온다. 맛은 어지간한 햄버거나 샌드위치와 견줄 만큼 괜찮다. 이 조합 찬성일세. 딸아이와 다음에 또 만들어 먹기로 약속한다.
■'5분 만에 뚝딱' 명품 잡채
잡채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요리를 좀 한다'는 나도 귀찮아서 지레 포기하기 일쑤다. 하필이면 이렇게 만들기 귀찮은 음식을 아내는 제일 좋아한다.
'비비고 잔칫집 모둠잡채'는 프라이팬에서 5분이면 완성이다. (내 기준으로) 잡채를 직접 조리하려면 재료 준비부터 1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가히 획기적인 제품이 되시겠다. 돼지고기와 함께 표고버섯과 만가닥버섯, 목이버섯과 양파, 당근, 부추 등 6가지 고명이 들었다. 제품 포장에는 3~4인분이라고 적혀 있지만 우리 가족에겐 딱 2인분이다. 일단 비주얼은 음식점에서 나오는 잡채와 동급이다.
메뉴를 잡채덮밥으로 정했다. 매콤함을 추가하고자 파김치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잡채의 간이 세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파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잡채, 밥과 함께 쓱쓱 비비면 말 그대로 꿀맛이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데 5분이면 족하다. 우리 엄마의 손맛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잡채가 먹고 싶을 때 후다닥 만들어 먹기에는 이 만한 게 없을 듯하다.
조리과정을 알 리 없는 딸아이는 잡채를 한가득 입 안에 담고서 엄지를 치켜세운다. "와~ 엄마가 해준 잡채 진짜 맛있다." 손을 가로 저으며 냉정하게 진실을 알려줬다. "그거 네 엄마가 아니라 CJ제일제당이 만든 거란다."
■‘씹는 맛이 살아있는’ 떡갈비
떡갈비도 직접 만들어 먹기는 힘들다. 갈비살을 다지고, 양념해서 치대고, 도톰하게 모양을 잡아서 굽기까지 "비싸도 돈 주고 사 먹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올 법한 음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비고 남도 떡갈비'는 돈 주고 사 먹을 만하다.
한 봉지에 손바닥 만한 덩어리가 6개 들었다(내 손이 어른 손 치고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세 식구의 한 끼 반찬으로는 정량이라고 생각된다. 냉동 상태로 프라이팬에서 4~5분 뒤집어가며 구워주면 먹음직한 떡갈비로 변신한다. 다만,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호로록 태워먹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뜨끈한 밥에 떡갈비를 올리니 군침부터 돈다. 잘 익은 김치가 거들어주니 맛이 두 배, 세 배가 된다. 뭐니뭐니 해도 고기의 씹는 맛이 살아 있다. 고기를 갈지 않고 굵게 썰어 넣었다는 게 사실인가 보다. 게다가 불향까지 느껴진다. 딸아이는 아까부터 말 한 마디 없이 맛있게 냠냠 하고 있다. 역시 '단짠단짠'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맛의 정석(定石)이다.
■'육즙이 팡팡' 수제고기만두
아내가 아침식사 대용으로 만두를 준비할 때만 해도 "아침부터 무슨 만두냐. 여기가 중국인줄 아냐"고 쏘아붙였더랬다. 하지만 전자레인지가 돌아가고 1분쯤 지나면서 그 말을 취소했다. 전자레인지에서 솔솔 풍겨 나오는 냄새가 마음을 사로 잡은 때문이다. 급기야 침이 꼴딱 넘어간다. "CJ가 만두전문점의 수요를 가져오겠다"고 큰소리를 친 제품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접시에 담아내니 모양부터 제법 '수제'의 분위기가 난다. '손으로 빚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입 크게 베어무니 고소하고 향긋한 육즙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청양고추가 들어가 살짝 매콤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만두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호~호~ 입바람을 불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과연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비비고 만두답다.
우리 가족의 공통된 평가는 "큰소리 칠 만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청양고추의 칼칼함이 자칫 느끼할 수도 있는 만두소의 맛을 꽉 잡아준다"는 내용을 꼭 넣어달란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한 봉지에 4개 뿐이어서 세 식구가 먹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식가인 우리 가족에게는 역시 '1인 1봉'이 진리다. '비비고 수제만둣집맛 고기만두' 네 이름 기억해둘게.
■비린내 없는 '겉바속촉' 생선구이
이번에 장을 봐온 음식들 가운데 아내가 가장 반긴 메뉴는 단연 생선구이다. (조리도 못하지만)본인이 생선을 먹지 않는 탓에 우리집 밥상에서 생선구이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그런데 생선을 따로 손질할 필요도 없고, 전자레인지에 딱 1분만 돌리면 되는 '비비고 생선구이'라니. 아내에게는 신세계가 열린 셈이다. 연기나 비린내는 1도 나지 않는다. 고등어, 갈치, 꽁치 등 귀에 익숙한 생선에 임연수, 삼치, 가자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큰 가시가 없어 아이들이 먹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딸아이가 선호하는 갈치와 고등어에 내가 즐기는 가자미와 임연수까지 잔뜩 담아왔다. 우리 둘에게 한 끼 생선 한 토막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얀 쌀밥에 갈치구이'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 않나. 실제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맛있다. 갈치나 임연수도 좋지만 단연 가자미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살이 두툼해서 상대적으로 씹을 게 많다. 겉이 바삭해서 먹는 내내 고소함이 떠나지 않는 것도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이날 아내는 모두 다섯 번 전자레인지를 돌렸다.
나는 생선 세 마리, 딸아이는 두 마리를 각각 뜯었다. 아내는 "생선구이만 반찬이냐. 다른 것도 좀 먹어"라면서도 '심봤다'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 입장에서는 이걸로 당분간 반찬 고민 끝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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