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 출신 미셸 윌리엄스
우울증이 시작된건 십대때부터다
가수로, 신앙인으로 삶이 중요했기에
오랫동안 마음의 신호를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내 내면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도움을 청할 것, 남과 비교하지 말 것
내가 치료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다
우울증은 결국 사람됨의 일부일뿐
과오가 있음에 주님은 날 사랑하신다
비욘세 등과 함께 여성 3인조 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로 활동한 미셸 윌리엄스는 어린시절부터 우울감에 시달렸다. 나이 들면서 우울증을 이겨내고 있는 그녀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는 베드로전서 5장7절의 말씀을 거론하며 머뭇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세 단어를 말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I need help)."
한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세 단어다. 나도 안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마침내 나도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열세 살 무렵에 시작됐던 거 같다. 돌이켜 보면 그저 날 불안하게 하는 감정들이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거나 앞으로도 정말 중요치 않을 거라는 일시적인 느낌, 한밤중에 침대에서 나와 이유없이 마루를 서성이게 한 불안, 정신적인 무감각, 사랑받고 있음에도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기분 등이었다. 얼마 안 있어 이것들이 우울증의 전조임을 알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저 그걸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몇 년 후에 '데스티니스 차일드'로 활동할 때도 그런 기분이 올라왔다. 나는 '오, 우울증이네. 여태 여기 있었니? 난 공연하러 가야 해. 나중에 얘기하자'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3년 전, 빠져나올 수 없는 아주 어두컴컴한 구멍으로 곤두박질쳤다. 소파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었다. 목사님 부부와 약속한 행사에 가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이 머리에 펼쳐졌다. 그래도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이건 너답지 않아, 미셸."
사람들이 말했다. 바로 그때, 가장 힘 있는 세 단어를 말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허락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
전에 면담했던 치료사에게 전화했더니, 입소할 시설을 추천해 주었다. 계획이 세워졌다. 혼자 운전해 거기까지 갔다. 가방이나 칫솔, 갈아입을 옷도 챙기지 않았다.
매해 미국 성인 1600만명 이상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주요 우울 장애를 겪는다. 범불안장애는 거의 700만명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중 절반 이하만 치료법을 찾거나 치료를 받는다. 특히 기독교인에게 그런 경향이 짙은데, '위대한 의사'를 실망시키려 들지 않고 우울증을 신앙의 실패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묻는다. 만약 암이나 다른 병에 걸려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것인가.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우울증도 병이다. 우울증은 당신이 누구인지, 대외적인 삶이 어떤지 개의치 않고 내면을 파고든다. 내게는 빼어난 경력이 있었다. 내 음악은 기독 신앙에서 싹텄다. 만사가 잘 풀려 가는 것 같았고,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내면의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치료센터에 입소하는 행위가 힘을 되찾는 첫 단계였다. 여기에 내가 배운 바를 털어놓는다.
도움을 받아들이자.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 때문에 우울해야 하니? 잘 해내고 있어. 사람들은 네 커리어를 갖고 싶어 한다'라고 나는 스스로 꾸짖었다. 외면은 중요하지 않다. 목사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제야 나는 굴복했다. 우울증은 여러분이 더 나은 기분을 느낄 자격이 없다고, 그 감정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나는 대양 한가운데서 개헤엄을 치는 기분이었다. 시설에서는 마침내 해안에 도착해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친절한 간호사 한 사람이 내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걸 알고 대형 할인마트에 가서 잔뜩 옷을 사다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믿을 수 없었다. 우울증은 감사의 마음을 묵살한다. 하지만 작은 감사가 수용과 치유의 시작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자. 겪고 있는 일을 그저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우울증과의 싸움에서 숨김이 없었는데, 때로는 인터뷰 진행자 앞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솔직함과 받아들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이 중독자라는 건 시인하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는 알코올중독자는 병을 제대로 받아들인 게 아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받아들이면 스스로 주변 사람들과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끔 허용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도움이다. 그분을 속일 순 없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테니트라다. 미셸은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이다.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물었다. "여자애들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할까? 테니트라? 아니면 미셸?" 나는 내 일부를 상실하면서그 의견을 따랐다. 나는 그저 묻어 둔 채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상처가 되었다.
7학년인지 8학년 때였다. 내 목소리에 담긴 힘을 발견했고, 내가 자란 일리노이주 록퍼드에 있는 마케도니아 침례교회에서 노래하는 도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정면으로 느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연예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내 커리어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의 절반을 숨긴 채로 지냈다.
얼마전에 '복면가왕'에서 경연하며 짜릿함을 느꼈다. 가면을 쓴 채로 공연하면서 나는 격정적이고 자유로웠다. 나는 스스로 '낡고 피곤하며 끝장난'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미셸은 끝났다. 하지만 테니트라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다시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이 얘기한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고 진실이며 날 자유롭게 한다.
감정을 느끼되 그에 속지 말자. 내 감정이 너무 부끄러웠다. 산소가 불길을 키우듯이 수치심은 우울증을 키운다. 어떤 이는 우울증에 취약하다. 그걸 판단할 필요는 없다. 병처럼 치료하면 된다.
"가끔 내가 입을 열면 엄마가 나와요"라고 쓰여 있는 장식용 자석이 있다. 내 어머니는 총명한 여성이다. 10분 만에 설득력 넘치는 편지를 10페이지나 써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윌리엄스 부인의 분노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거다.
분노는 내게서도 튀어나올 수 있었는데, 특히 거부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처럼 뿌리깊은 감정을 숨길 때 그랬다. 감정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적이지 않은데도 진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랑받고 있는데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거나 충분히 괜찮은데도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은 잘못된 평판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감정을 느끼되, 그에 직면하자.
비교하지 말자.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음반 판매량이나 소셜미디어 팔로워를 확인하는 건 음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열면, 보여 주고 싶은 모습 그대로인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 주는가. 자기 자신을 누구와 견주는지 자문하자. 내 신앙은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과 나 자신을 비교하고 그에 걸맞게 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내 과오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그 과오 때문에 날 더 사랑하신다는 걸 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비교는 특히나 해롭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는 수많은 아이가 분노와 우울로 고생하는 건 당연하다.
걱정거리를 던져 버리자. 삼촌은 언제나 우리를 낚시하러 갈 때 데려갔는데,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종종 몹시 추웠고 삼촌이 미끼로 쓰던 작은 핫도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물에 낚싯줄을 던져야 했고, 내게는 어려웠다. 낚싯줄을 던지는 일은 작고 여윈 10대 초반 소녀가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두 번째도 그랬고 세 번째도 그랬다. 즉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짜증을 내곤 했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게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어부였던 베드로는 걱정과 불안을 이야기하면서 '던지다(cas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cast)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고 베드로전서 5장 7절은 전한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걱정을 다 주께 맡기라"거나 "온갖 근심 걱정을 주께 맡기라"고도 한다. 핵심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래야 한다는 거다. 그러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간이고 항상 제대로 해내는 게 아니기에 짜증스러울 수도 있다. 분명 나도 늘 올바르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괜찮다. 우울증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불완전하더라도 우울증을 주님과 함께 나누는 것임을 배웠다.
평생토록 내게는 완벽한 딸, 흠잡을 데 없는 직원, 오롯한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작은 목록이 있었다. 모든 항목을 지우면 괜찮았다. 하지만 모든 상자에 체크 표시를 하지 못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걱정을 맡기는 대신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목록을 섬기고 말았다. 요즘에는 나만의 목록에 표시하는 대신, 하나님의 목록을 지워 나간다. '누가 내게 화를 내지? 커리어 측면에서 내가 무엇을 해냈지? 나는 왜 미혼이지?'라고 자문하는 대신, 하나님의 목록과 그분께서 날 위해 하신 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글로 쓰려고 한다. 축복 목록이다.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 내 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보다 더 감사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라는 것이다.
이번 한 해는 우리 모두 힘들었다. 코로나19 소식을 처음 들은 건 에미상과 그래미상 같은 시상식 공연 시즌을 맞아 LA에 있을 때였다. 5월 말에 시작하려던 성대한 순회공연을 준비하면서 상태도 훨씬 좋았다. 갑자기 모두 집에 머물라는 요청을 받았다. 순회공연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했지만 얼마 후에는 '오, 안돼. 우울증에 빠지겠어. 악순환에 빠지면 어쩌지. 누가 날 도와줄까'라는 기분이 들었다. 우울증은 무엇보다 고독 속에서 활개친다. 우울증은 여러분을 홀로 두고 싶어 한다.
애틀랜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길게 산책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확인했다. '암울한 감정을 피하고 있는가? 그것을 받아들이자. 정말 괜찮은가? 속이지 말자. 오늘은 주님께 어떤 걱정거리를 맡겨야 하는가? 해내자!'
여러분은 나와 같은 정도의 우울증으로 고통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이가 때때로 우울해진다. 우울증은 사람됨의 일부다.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는 가장 힘 있는 말이다. 기쁨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줄 열쇠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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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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