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기술 총집합… 누리호 숨은 주역 K-방산기업
KAI 부품조립·탱크제작 총괄
최대 난제 1단 추진체 연료탱크 제작
사천에 민간 우주센터 세워 기술 주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독자엔진 개발
75t급 액체로켓엔진 세계 7번째 생산
그룹차원 스페이스허브로 사업 확장
현대중공업 48m 발사대 세우다
추력 300t급 발사체 운용도 거뜬히
냉각수·추진제 공급능력 대폭 높여
현대로템 시험설비 만반의 준비
발사 전에 다각도로 미리 추진시험
유체·구조역학 등 최첨단 공학 집적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발사 성공에는 국내 민간 방위산업체들의 노력이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그룹, 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표 방산기업의 기술력이 총집약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에 국내 기술이 적용됐다. 누리호 발사를 위해 중대형 액체로켓엔진을 개발했고, 이 엔진을 개발할 설비도 구축했다. 대형 추진제 탱크와 발사대까지 독자적으로 구축했다. 총 참여 기업은 300여개에 달한다. 누리호 전체 사업비의 80%인 1조5000억원이 참여 기업에 투입됐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국내에서도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 시대가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KAI, 조립 총괄…핵심기술 1단 탱크 국산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누리호 제작에 참여한 300여개 기업이 만든 부품 조립을 총괄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협업을 통해 로켓의 1·2·3단의 각 단이 하나로 결합되는 전기체 인증모델을 이용한 전기체 총조립, 이송, 발사대 거치 및 인터페이스 검증시험을 수행했다. 전기체 비행모델의 총조립 및 기능시험도 완료했다.
최대 난제였던 1단 추진체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제작했다. 1단 탱크 제작 기술은 발사체의 핵심기술로, 우주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금지하는 분야다. KAI는 자사 항공기 제작 기술을 활용해 여러 차례 연구개발과 시행착오 끝에 1단 탱크 국산화에 성공해 누리호 제작의 선두에 섰다. 지난 2013년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KSLV-I) 1단 추진체는 러시아에서 들여왔지만 누리호는 KAI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KAI는 경남 사천에 우주 기술 개발을 위한 민간 우주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올해 2월 '뉴 스페이스 태스크포스(TF)'도 꾸리는 등 누리호 기술을 기반으로 우주 전문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년 입찰 예정인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 주관사에도 도전한다. KAI가 개발 중인 차세대 중형위성 3호도 발사할 예정이다. KAI 관계자는 "누리호의 성공적인 개발 과정을 통해 민간이 우주 개발에 참여하는 '뉴스페이스'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서 우리나라 역시 민간기업 주도의 우주산업생태계 구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화에어로, 75t급 엔진 제작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심장인 75t급 액체로켓 엔진을 제작했다. 75t급 엔진 개발 및 생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세계에서 7번째다.
누리호는 1단 75t급 액체추진엔진 4기, 2단 75t급 액체추진엔진 1기, 3단 7t급 액체추진엔진 1기가 사용된다. 이들 엔진 모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납품했다. 중력을 거슬러 200t에 달하는 누리호를 우주궤도에 올려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엔진뿐만 아니라 추진기관, 배관조합체, 구동장치 제작과 시험설비 구축에도 참여했다. 또 ㈜한화는 누리호의 가속·역추진 모터와 임무제어 시스템을 개발했고 한화테크윈은 터보펌프를 제작했다.
한화그룹은 3월 우주산업 컨트롤타워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하고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 그리고 한화가 인수한 인공위성 기업 쎄트렉아이가 모였다. 스페이스 허브는 5월 카이스트와 함께 우주연구센터를 설립했다. 한화그룹은 우주 기술 개발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관련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누리호 발사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자산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우주발사체 분야는 당장의 경제성 보다는 미래 기회를 선점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48m 발사대 국내기술로 제작
누리호가 발사되는 48m 높이의 발사대 제작은 현대중공업이 총괄했다.
이번 발사대는 2013년 나로호 발사대(제1 발사대) 옆에 새로 지었다. 제1 발사대는 나로호 개발 당시 러시아에서 기본 도면을 입수해 국산화 과정을 거쳐 개발된 발사대였지만, 제2 발사대는 순수 국내 기술로 구축한 발사대다. 현대중공업이 2016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사업에 착수해 완공했다.
제2 발사대는 추력 300t급인 3단형 한국형 발사체의 발사 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나로호는 1단에만 액체연료가 쓰여 지상에서 연료를 주입하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누리호는 2, 3단에도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제2 발사대는 지상에서 연료를 주입할 수 있도록 타워 구조물 형태로 건설했다. 면적도 6000㎡로 제1 발사대(3300㎡)의 약 2배 규모다. 발사체 연소 시작 이후 이륙 시점까지 분사되는 냉각수량도 초당 1.8t으로 이전보다 2배 늘었고, 추진제 공급량은 약 3배 많다. 발사체를 세우는 데 쓰이는 이렉터 등판능력도 1.5배 높다.
발사체가 최고 추력에 도달할 때까지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 줄 지상고정장치(VHD)와 발사체 이륙 시 엄빌리칼 케이블을 빠르게 수납해 발사체와의 충돌을 방지하는 엄빌리칼 케이블 수거 장치도 설치돼 있다.
■현대로템, 발사체 추진시험 설비 구축
현대로템은 추진기관시스템 시험설비 구축을 담당했다. 발사 전 추진시험을 해보는 단계다.
올해 3월 발사체 1단의 연소시험을 완료하며 추진기관시스템 시험설비 최종 성능을 점검해 누리호 발사 성공에 기여했다. 7t, 75t, 300t급 발사체의 수류시험과 연소시험을 모두 지상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발사 전 단계의 추진계통 성능도 살필 수 있다. 수류시험은 발사체에 추진제를 주입해 추진제 탱크, 밸브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피는 시험이고, 연소시험은 엔진을 점화시켜 발사체의 성능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현대로템은 추진기관시스템 시험설비 개발을 위해 발사체 구조와 작동원리, 운영방식을 연구하고 유체역학, 구조역학, 열유동해석, 제어·계측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했다.
해외 기술 도입 없이 협력사들과 협업을 통해 순수 국내 기술로 시험설비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누리호 이후에 우주로 쏘아 올릴 발사체의 주도적인 시험이 가능해, 한국 항공우주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발사체 추진기관시스템 시험설비, 수소, 무인체계 등 미래 성장잠재력이 높은 부문에서 다양한 신사업들을 전개하며 장기적인 성장동력과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나가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