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경 동덕여대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신북방 및 신남방 국가와의 경제협력 정책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신북방 국가들은 우리 기업의 시장 다변화와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지역이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경험은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건의료나 디지털 분야에서 그 필요성을 한층 크게 느끼고 있다. 신북방 국가들과 우리나라 양측의 국가 지도자들 대부분이 상생번영을 위한 호혜적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북방 정책은 신남방 정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신북방 지역은 신남방 지역의 아세안과 같은 통합된 협력체가 없고, 대부분 구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점에서 정책수행에 어려움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신북방 국가와의 협력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북방 국가들과의 지속가능한 협력을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하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필자는 인문학적 친연성(親緣性)이 높은 터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투르크 국가들과 스토리를 통한 ‘문화적 공동체’ 구현을 대안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통찰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갖고 있던 사피엔스가 지구의 문명을 주도하는 최고의 능력자 종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였다. 언어는 ‘인지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사피엔스는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편가르기를 하고, 서로 뭉치고 싸우고 협력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능력이 거대 담론과 서사와 이데올로기, 국가, 민족, 전쟁 등 역사와 문명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투르크 국가들과 공유하는 역사·문화적 친연성은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를 통한 ‘상상적 공동체’ 구현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오늘날에 꼭 필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투르크 국가들과 한국 간 이미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 왔던 ‘친연성’은 엄청난 상징자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 전설, 옛날이야기, 영웅서사시, 민속놀이 등의 무형유산을 활용해 역사문화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투르크 국가들과 우리나라가 역사문화 공동체로서 사회연합체 혹은 협의체를 구성한다면 정치, 경제, 문화, 외교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류는 전 세계인의 심장과 가슴을 울리고 있다. 방탄소년단,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모든 문화산업 분야에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무형의 문화를 ‘소비’로 끝나지 않도록 ‘스토리’로 엮어 거대 담론과 서사로, 그리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화협력체로 녹여내는 연금술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 실현을 위해서는 신북방 지역, 특히 그 중에서도 잠재적 ‘스토리’가 풍부한 투르크 문화권 국가들과 협력을 위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역할이 있을 때 가능하다.
2022년이면 대부분의 신북방 국가들과 외교관계 수립 30주년이 된다. 30주년의 의미가 더 살아날 수 있도록 새로운 협력 증진의 모멘텀으로 만드는데 ‘스토리’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오는 11월 18일 14개국 북방 국가들이 참여하여 개최하는 제3차 북방포럼이 ‘스토리에 기초한 문화공동체’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기고: 오은경 동덕여대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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