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파이낸셜뉴스] 삼성전자의 신(新) 인사제도는 내년부터 시행된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내년에 새 기준으로 평가를 받고, 이에 따른 첫 결과로 2023년도 인사에서 승격과 보상이 적용된다. 개편안은 철저한 성과주의 메시지로 점철된 것이 특징이다. 큰 공을 세워도 제한적이었던 기존 보상 체계의 천장을 걷어내고, 직급·나이와 상관없이 발탁 승진도 대거 실시할 계획이다. 절대평가로 직원의 개인기를 강조하면서도 동료평가로 팀플레이를 평가하겠다는 복안도 엿보인다. 앞으로는 일은 안 하고 월급만 타가는 저성과자인 이른바 '월급 루팡'은 새 시스템에선 자동적으로 도태돼 고용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잘하면 더 주고, 못하면 안 준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런 내용의 신 인사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심을 거듭해왔고 전날 큰 틀의 개편안을 완성, 그룹장과 CA(변화관리자·Change Agent)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전파했다.
개편안은 △5년마다 직무전환 기회 주는 프리에이전트(FA) 제도 도입 △국내-해외 우수인력 교환근무제 실시 △승격 관련 표준체류연한 폐지, 성과 전문성 기반 발탁 확대 △상위 10% 제외한 90% 절대평가 △역량평가 폐지·역량진단 및 수시 피드백 진행 △동료평가(피어리뷰) 도입 △성과인상률은 고정형에서 9개 범위형으로 변경 △호봉에 따른 자동인상(페이존) 폐지 등이 골자다.
역대 최대인 11만400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적용되는 만큼 나기홍 인사팀장(부사장)은 "원래 여름께 개편안을 발표하기로 했었는데 11월이 돼서야 발표하게 됐다"면서 평가와 승격 제도를 손질하는 데 고민을 거듭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개편안은 철저한 직무·성과주의와 신상필벌이 핵심이다. '일 잘 하는 직원은 더 주고, 저성과자는 더 주지 않겠다'는 명료한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일만 잘하면 해외법인이든 어느 부서든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칸막이도 없앴다. 자리만 지키면 월급이 오르는 연공서열도 중장기적으로 탈피할 예정이다.
특히 고성과자(EX) 10%를 제외한 나머지 90%의 업적평가에 절대평가가 실시된다. 현행 삼성전자의 임직원 고과 평가는 'EX'(Excellent)와 'VG'(Very good), 'GD'(Good), 'NI'(Need improvement), 'UN'(Unsatisfactory) 등 5개 등급으로 구성된다.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이론적으로 90%가 GD 등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사측 설명이다.
또한 기존의 역량평가를 폐지하고 자유로운 방식의 역량진단이 도입된다. 역량진단은 본인이 제안하고 부서장이 평가하는 방식이며 승격에 참고할 뿐 보상에는 활용되지 않는다.
동료평가(피어리뷰) 방식도 새롭게 도입된다. 피평가자가 업무 연관성이 높은 동료 5~7명을 추천하고 부서장이 리뷰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리뷰어가 된 동료는 코멘트를 쓰고, 피평가자에게는 익명으로 전달된다.
회사는 신 인사제도와 관련 내달까지 임직원 동의절차를 진행, 내년부터 새 평가방식을 시행할 예정이다.
■삼성식 성과주의, 재계 확산 초읽기
이번 제도 개편에 대해 임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과도한 성과주의, 무한 경쟁으로 인해 업무 스트레스가 클 것이란 의견과 보상 체계를 정비한 회사의 방향성에 공감한다는 의견 등이 대표적이다.
생소한 동료평가 방식과 고과권자의 권한이 남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자칫 인기투표로 변질돼 '사내 정치'가 횡횡해질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회사는 평가가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시 피드백이란 장치를 마련했다. 수시 피드백으로 연초의 목표달성 수준을 점검하고 성과에 대한 격려와 미진한 사항을 전달받는 방식이다. 피평가자가 고과 평가 전에 본인의 중간 현황을 체크할 수 있어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동료평가는 이미 삼성전기에서 시행 중인 제도로 긍정적인 효과를 얻어 삼성전자에 도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맏형'인 삼성전자의 이같은 인사실험은 결과에 따라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국내 대기업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재계에선 직무·성과중심의 고용 전환이 화두인데, 삼성전자가 총대를 멘 상황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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