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국내 증시 탓에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증권 투자로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코스피지수는 3000선에서 횡보 중인 반면, 미국 주요 지수들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채권 보유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순매수 결제 금액 역시 4·4분기 들어서만 3조원 가까운 규모를 기록했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국내투자자의 외화증권 보유잔액은 1016억800만달러(약 120조6086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3·4분기 말(897억1600만달러) 대비 13.2% 증가한 규모로, 특히 주식 보유액은 같은 기간 17.6% 늘어났다. 채권의 경우 230억3000만달러에서 231억4400만달러로 0.5%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미국 주식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은 668억2200만달러어치로 전체 해외주식의 85%를 넘어섰다. 홍콩(38억7500만달러), 일본(32억3100만달러), 중국(27억7100만달러) 주식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이 담은 종목은 단연 테슬라였다. 지난 22일 기준 테슬라 보유금액은 148억7623만달러에 달했고 특히 이달 순매수 금액만 3억2936달러에 달했다. 이어 애플(43억1890만달러), 엔비디아(29억6034만달러), 알파벳(22억3714만달러), 아마존(20억9688만달러), 마이크로소프트(20억8538만달러) 등의 순이었다.
4·4분기 외화증권 순매수 규모는 24억8700만달러(약 2조9318억원)에 달했다.
맥을 못 추는 국내 증시와 달리 미국 주요 지수들이 강한 모습을 보이자 투자자들이 눈을 돌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코스피지수는 4·4분기가 시작된 10월초부터 한달 반 동안 2900~3000선에서 박스권을 형성하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개인들은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에서 4200억원어치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반면 이 기간 다우존스·나스닥·스탠더스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각각 3.7%, 10.2%, 7.8% 뛰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미국 증시가 탄탄한 경기 기반을 토대로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해외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다.
이원주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3000선에서 횡보하고 있지만 S&P500지수는 최근 1~2개월동안 10% 가량 상승했다.
이는 미국이 세계 각국의 달러를 흡수하려는 여러 조치들이 증시에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이를 인지하고 있는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규모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홀로 경기 호조를 보이는 미국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내년 금리 인상 등 긴축 조치를 실시 및 예고하면서 경기 회복도 전에 긴축에 착수하고 있는 신흥국에서 빠진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지금 기대감을 한껏 받고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다"며 "한국 증시만 부진해지는 등 미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극심해지진 않겠으나 당분간 미국 증시 전망이 밝은 만큼 이에 대한 투자 규모는 불어날 것"이라고 짚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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