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공약이 발표되고 있지만, 거대 양당의 공약이나 후보들의 발언이 젠더 감수성은 떨어지고 성평등과는 거리가 멀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정책 이슈에선 여성정책이 실종되었고, 퍼스트레이디 자격 기준 같은 여성 가십거리만 쏟아져 나온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설명하는 논리는 후진적이고 백래시까지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페미니즘이 일반적 정책으로는 매우 부합하고 맞는 말인데, 부분적으로 보면 갈등과 문제를 일부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민 끝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 '여성' 자가 들어가니까"라고도 했다. 이는 야당도 마찬가지이다. 여성가족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등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며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게다가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까지 신설했다.
더 나아가 민주당 한준호 의원은 영부인의 기준을 출산 여부에 두고 양 당의 배우자를 비교해 품평했다. 난임 여성의 아픔을 간과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간주한다는 여성계의 비판에 직면하여 사과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이에 질세라 야당도 배우자포럼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의 선거전략을 내놓았다. 여성을 남편의 조력자로 인식하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배우자라는 사적인 역할이 공적인 지위를 갖추어서 계급화되어 비선으로 연결되기 쉬운 문제점도 눈에 보인다. 이들의 눈에는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여성 유권자는 보이지 않나 보다. 지난번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투표율이 더 높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청년 남성들이 여성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많다. 여권신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조장된 측면이 더 크다. 한정된 자원을 성별로 당연히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인식하기보다 드센 여자들한테 빼앗겼다고 부추기면 정말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부추기는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공공연하게 강조한 이번 정부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여성 측면에서 보면 페미니스트 정부가 다른 정부와 다르게 여성을 위해 특별히 더 한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있긴 있다. 역대 정부 최초로 30% 여성 장관 할당제를 실현했다. 하지만 여성 장관 30%가 여성들의 삶과 지위 향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는지는 의문이다. 대신 권력형 성범죄에 침묵하고 슬쩍 넘어가면서 선택적 페미니즘이라는 비판도 받는 상황이다.
지난번 선거에서는 지역 갈등, 세대 갈등이 분출되더니 이번 선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젠더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이슈이든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어주고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역할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젠더 갈등이 해소되고 성평등을 위해 한 발자국 더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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