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 인천공항 슬롯점유율 39%
美 사례 비하면 절반에도 못미쳐
공정위, 운수권 재배분 나설땐
통합 항공사 고용유지 등 악영향
글로벌 10위권의 메가 캐리어 도약을 위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통합작업이 해를 넘긴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자 항공업계 반발이 거세다. 단순 합산 숫자만을 가지고 독과점 운운하는 것은 항공산업의 특성을 모르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자칫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 대규모 고용불안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슬롯 점유율 확대와 반대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코로나 직전인 지난 2019년 기준 대한항공의 인천국제공항 슬롯 점유율은 23%, 아시아나항공은 16% 수준이다.
슬롯이란 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을 의미한다. 양사의 슬롯 점유율을 단순 합산하면 39%로 낮지 않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슬롯 재배분 등 조건부 승인을 내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양사 M&A가 경쟁 제한성이 있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심사관의 의견"이라며 "국토교통부의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양사의 슬롯 점유율은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대형항공사 위주로 핵심 공항에서 슬롯 집중도를 높이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같은 2019년 기준 미국의 경우 아메리칸항공의 댈러스공항 슬롯 점유율은 85%에 달한다. 델타항공의 애틀랜타공항 슬롯 점유율도 79% 수준이다. 유럽도 핵심공항의 자국 대형항공사 슬롯 점유율은 50% 이상이다. 루프트한자의 프랑크푸르트공항 슬롯 점유율은 62%, 영국항공의 런던히스로공항 슬롯 점유율도 50%다. 이 밖에도 주요 도시 가운데 두바이공항의 에미레이트항공 슬롯 점유율은 68%, 싱가포르공항 싱가포르항공 슬롯 점유율은 51%, 시드니공항 콴타스 점유율은 50% 수준이다.
■조건부승인 LCC에도 도움 안돼
이 때문에 슬롯의 재배치는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장거리 노선의 경우 대형기만 운항이 가능한데,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은 중소형 기종만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비용항공사들이 대형 기종을 구매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외국 항공사들이 이들 노선을 가져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외국 항공사들이 호시탐탐 국내 항공시장을 노리는 상황에서 무리한 제한을 둘 경우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면서 "특히 슬롯, 운수권은 국내선 위주의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보다 외국 항공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려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완전자율경쟁시장인 항공산업 특성상 특정 노선의 독과점이라는 말 자체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은 2024년까지 제4활주로 건설, 계류장 확장, 관제인원 확대 등을 토대로 시간당 출·도착 슬롯을 최대 107회까지 늘릴 예정이다. 신규 통합 항공사의 슬롯 점유율이 지금보다도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운수권, 슬롯 등을 재배분할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의 핵심 과제인 고용승계가 사실상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재배분을 하게 될 경우 기존 노선이나 운항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유휴인력이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국가 항공산업 경쟁력 제고와 고용유지 등 다른 나라 경쟁당국이 외면하는 주요현안들을 감안해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전날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소뿔을 자르겠다고 소를 죽이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독과점 우려에 따른 운수권 축소 전망이 있는데 종사자 일자리와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제고와 회복이라는 통합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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