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떠나기 좋은 울산
'영남 알프스' 간월재 억새평원
수직절벽에 새긴 대곡리 암각화
알고 있어도 또 가면 좋은 그곳
'그린 옷' 입은 태화강 십리대숲
댓잎 바람 느끼며 걷는 명소로
사진=조용철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간월재와 반구대 암각화, 태화강 십리대숲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울산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다. 맨위 사진부터 환하게 불을 밝힌 태화강 십리대숲, '영남알프스'의 핵심인 간월재 억새평원,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반구대 암각화. 사진=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울산=조용철 기자】 눈과 마음이 호강하는 가을 풍경으로 치자면 울긋불긋한 단풍을 따를 것이 없다. 단풍이 화려한 가을을 맛보게 한다면, 억새는 보다 잔잔하게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한다.
해발 900m 이상의 고지대에 드넓게 펼쳐진 억새 평원은 단풍과는 색다른 가을의 멋과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가을 풍경이라면 억새만 한 것이 있을까. 선선히 부는 바람에 한없이 쓰러졌다가 일어나고,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억새는 여행객들에게 가을의 낭만을 안겨준다. 흔히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울산 간월재에는 늦가을 낭만의 물결이 출렁인다.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 늦가을의 한켠에 섰다.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가 마음을 온통 휘저어놓고는 제대로 만끽할 새도 없이 돌아갈 채비를 한다. 주왕산, 설악산 등 단풍으로 유명한 산은 어영부영하는 사이 앙상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손끝까지 시려오는 늦가을의 끝자락이지만 이대로 보내기엔 왠지 허전하기까지 하다.
■가을의 끝자락, 간월재 억새평원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성급하게 돌아가는 단풍과는 달리 억새는 여전히 가을빛 정취를 지키고 있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억새는 가을이 깊어질수록 은빛 머리를 휘날리며 가을이 끝나도록 하얗게 나부낀다. 외롭거나 쓸쓸한 가을 낭만을 색깔로 표현하면 울긋불긋한 단풍보다는 하얀 억새가 보다 어울릴 듯하다. 바람에 휘청이는 가녀림도 가을의 쓸쓸한 감성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간월재 억새군락지에는 마지막 가을이 여행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간월재에 오르면 오른쪽은 간월산, 왼쪽은 신불산이다. 간월산 정상까지는 800m, 신불산까지는 1.6㎞다. 간월산은 배내봉으로, 신불산은 영축산과 통도사로 이어진다. 간월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계단이 조성돼 있고 중턱에는 간월재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간월재 휴게소에서 파는 구운 달결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거나 거센 바람을 피해 잠시 쉴 수 있다.
억새 산행으로 유명한 간월재는 영남알프스의 핵심이다. 밀양시, 양산시, 울산 울주군을 아우르는 해발 1000m를 웃도는 산들이 거대한 산악지대를 이룬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신불산, 영축산, 운문산, 천황산 등 우뚝 솟은 산들의 능선이 가히 유럽의 알프스 산맥을 닮았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라고 불린다. 간월재는 신불산과 간월산 능선이 서로 만나는 자리다. 두 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간월재에는 가을이면 억새가 바다를 이룬다. 넓이가 무려 33만㎡에 이르는 간월재의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는 온통 억새로 뒤덮였다. 해발 900m 고개에 억새의 물결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햇살에 비친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단지 바라만 봐도 좋지만 감사하게도 억새밭 사이에 데크가 놓여 있다. 데크길을 따라 억새밭 사이를 걷다보면 은빛 바다에 풍덩 빠져든 것 같다. 바람이 억새를 어루만지면 사르락사르락 소리가 어지러운 마음을 한껏 편안하게 만든다. 억새의 물결은 햇빛에 민감하다. 이른 아침에는 창백하도록 흰빛을 띠지만 해질 무렵에는 따뜻한 노란빛으로 바뀐다. 한낮에도 억새는 햇빛의 방향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역광에는 하얗게 빛나지만 순광에는 누런빛이다.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억새를 보기 위해 새벽같이 오르는 여행객도 있고, 해질 무렵까지 기다리는 여행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간월재를 뒤로 한 채 울산 반구대로 발길을 돌렸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반구대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을 닮은 기암절벽이다. 반구대 주변으로 하천이 구불구불 흐르고 하천을 따라 수직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져 계곡을 이룬다. 반구대를 중심으로 계곡의 남쪽과 북쪽에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관념을 표현한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물이 흐르고 바위절벽에 암각화가 새겨진 주변 경관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덕분에 반구대는 선사시대부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계곡과 대곡리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를 묶어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약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고래나 거북과 같은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같은 육지동물, 활을 이용한 동물사냥과 배와 작살을 이용한 고래사냥 그림 등 선사시대 사냥과 해양 어로 활동의 일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는 과거 태화강과 울산만 주변에 뛰어난 해양 어로 문화를 가진 포경 집단이 살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곡리 암각화는 약 7000년에서 3500년 전인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천전리 암각화 중심 암면 왼쪽 부분에는 사슴, 물고기 등 동물 문양이, 상단부분에는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암각화나 청동거울, 청동검 등에 표현된 문양과 비슷해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심암면 밑에는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새긴 행렬 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 세선화를 볼 수 있다. 특히 신라 법흥왕대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울산의 허파, 태화강 십리대숲
울산은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등 우리나라 주요 중공업을 이끄는 산업 수도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공업도시라는 풍요 뒤에는 환경오염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 옛말이다. 악취로 숨 막히던 장소가 이제는 여행객들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됐다. 태화강은 공업도시 울산을 가로지른다. 한때 죽음의 강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2004년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과 함께 태화강 살리기가 시작되면서 울산 시민은 물론 전국의 여행객들이 찾는 국가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중심에 태화강 십리대숲이 자리한다.
강변을 따라 십리나 펼쳐지는 대숲은 울산의 허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70만 그루의 울창한 대나무숲은 말그대로 별천지다. 대나무 사이로 아담하게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태화강에서 불어오는 맑은 강바람이 댓잎을 흔드는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yc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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