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항공여행 감소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화물기 개조 등 발빠른 대응으로 흑자를 기록해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나 여전히 고유가에 코로나 재확산, 낮은 항공수요 등의 3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추진되면서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항공사로 변신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지만 이마저도 매우 더디고 불안한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간 지연돼온 기업결합 심사를 연말까지는 마무리 짓겠다고는 하지만 그나마도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승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운수권을 제한하게 되면 그 운수권은 우리나라의 다른 항공사에 이전돼야 하지만 항공사마다 사용하는 항공기가 다르고 목표로 하는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운수권을 이전한다고 해서 적절히 사용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가령 통합 항공사의 파리노선 운수권을 제한하면 다른 항공사인 저비용항공사들은 취항할 수 있는 기재조차 없어 운수권 활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설령 운수권이 이전되더라도 운수권을 이전받은 항공사가 자동적으로 양국 공항에서의 슬롯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배정받은 운수권과 슬롯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항공사 고유의 무형자산으로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KLM의 합병, 2008년 노스웨스트항공과 델타 합병 및 2010년 미국 콘티넨털항공과 UA의 합병에서도 운수권이나 슬롯이 제한된 예는 찾기 어렵다.
각국 정부는 항공회담에서 자국항공사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운수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운수권은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항공사에 배정되고 있다. 슬롯 또한 정부와 항공사가 최상의 영업을 위해 사활을 걸고 황금시간대를 얻고자 노력한다. 그만큼 각국의 항공운송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공정위가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운수권이나 슬롯을 제한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지극히 불합리한 선택이다. 공정위와 일부 시민단체는 노선 독점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항공시장의 경쟁구조를 고려하면 노선별로 상대국 항공사와 운임과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적다. 오히려 국적항공사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면 고객은 노선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편의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의 많은 항공사들은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항공사 간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항공사도 이런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항공시장을 선점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국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조속히 마무리해 세계적인 초일류 항공사를 보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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