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듯하면서도 도무지 끝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 와중에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팬데믹 2년차인 올 한해 동안 공연계는 지난해에 이어 분투했다. 때로는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반토막 난 객석 속에서도 한국 공연예술계는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중단된 위드코로나… 그늘진 공연계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객석 소독을 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및 위중증 환자 급증으로 단계적 일상회복을 중단하고 방역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뉴시스
올 한해도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수많은 공연의 발목을 잡았다. 팬데믹 이후 공연 연기와 취소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 됐다. 올해도 전국의 대형 공연장뿐 아니라 소극장에서 1만여건에 가까운 공연들이 연기와 취소를 이어갔다. 지난 4월에는 뮤지컬배우 손준호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당시 출연중이던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일부 회차가 취소됐다. 7월 중순에는 국립정동극장의 직원 1명이 코로나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면서 산하 예술단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과 안무를 맡은 창작 공연 '바운스'의 개막이 취소됐고, 8월에는 뮤지컬 '판'에 출연하던 배우 1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조기 종연됐다. 또 9월엔 출연 배우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공연이 일시 중단됐고, 지난달 말에 또 다시 배우 박정자의 확진으로 일부 회차 공연이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밖에도 지난 4일에는 국립발레단 단원 1명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매년 연말 무대를 수놓던 '호두까기 인형' 공연 일부가 취소되기도 했다.
■클래식, K-피아니스트들의 약진
피아니스트 박재홍 /사진=뉴스1
올 한해 클래식계에서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권위있는 해외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이 결선에 오르거나 수상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 9월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린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와 2위는 한국인 피아니스트 박재홍(22)과 김도현(27)이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 / 금호문화재단 제공
박재홍은 2015년 클리블랜드 영아티스트 콩쿠르 1위 및 2016년 지나 바카우어 영아티스트 콩쿠르 1위에 이어 또 다시 권위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김도현은 2017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했고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세미 파이널 특별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피아니스트 이혁 /사진=뉴스1
이밖에도 지난 10월 6년만에 다시 열린 제18회 쇼팽 콩쿠르에서는 이혁(21)이 한국인 중 유일하게 결선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2016년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천재 소년'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혁은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에 실패했으나 안정된 테크닉과 주눅들지 않는 패기를 보였다는 평가를 얻었다.
■뮤지컬 '초연은 브로드웨이, 재연은 한국에서'
뮤지컬 '비틀쥬스' / CJENM 제공
팬데믹 여파로 부침을 겪었던 뮤지컬계에도 올 한해 남다른 변화가 있었다. 바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한 신작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한국에서 잇달아 공연되며 한국 뮤지컬 시장의 위상을 드러냈다. 지난 7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2019년 초연된 신작으로 브로드웨이의 최신 무대기술의 집합체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출가 앨릭스 팀버스는 "미국에서 한국은 뮤지컬 허브로 알려져 있다"며 "서울에서 첫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 에스앤코 제공
브로드웨이에서 '피케팅(피 터지는 티켓팅)' 돌풍을 일으킨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지난 8월 한국에 상륙해 내년 2월까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하데스타운'은 2019년 3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뒤 3개월 만에 토니상 15개 중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음악상, 편곡상 등 8개 상을 휩쓸었다.
■연극, 돌아온 올드보이들
국립극단의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서 파우스트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 / 국립극단 제공
연극 무대에선 TV 브라운관과 영화 스크린에서 활약했던 원로배우들이 돌아와 연륜을 과시했다. 지난 2월 배우 김성녀(71)는 국립극단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로 나서 크게 주목 받았다. 국내 연극계에서 여성이 파우스트를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극 '해롤드와 모드' 박정자 / 신시컴퍼니 제공
올해 팔순을 맞이한 배우 박정자(80)는 5월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 출연해 자신과 나이가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80세 '모드'를 맡아 열연했다.
연극 '리어왕' / 사진=뉴시스
원로배우 이순재(86)는 지난 10월부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으로 분해 "65년 연기인생의 모든 것을 무대에서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지난 5일까지 거의 매일 200분의 무대를 소화해냈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맡은 배우 오영수 / 파크컴퍼니 제공
또 올 연말은 배우 신구(85)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흥행의 주역인 배우 오영수(77)가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해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할로 내년 봄까지 무대에 오른다.
■현대무용, 이젠 콜드플레이·구찌와 콜라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헬로 구찌' 프로젝트 / 사진=fnDB
현대무용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2020년 조선 팝 밴드 '이날치'의 '수궁가' 앨범에서 안무로 협업한 뒤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뮤직비디오 조회수 3억뷰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올해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인 '콜드플레이',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인 '구찌', 자동차 브랜드 'BMW' 등과 협업을 꾸준히 진행해오며 전세계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냈다.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이들은 현대무용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지난 8월 국립현대무용단의 프로젝트 공연 'HIP合(힙합)'에서 우리의 전통 노동요를 바탕으로 한 신작을 선보였고 이후 경기 고양, 춘천, 천안, 포항 문화재단과 함께 신작 '얼이섞다'를 선보이며 지난 2일까지 전국 투어를 이어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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