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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대 뚫고 나온 물감, 회화적 관습을 깼다 [손이천의 '머니&아트']

하종현 '접합'

마대 뚫고 나온 물감, 회화적 관습을 깼다 [손이천의 '머니&아트']
하종현 '접합 96-101'(1996) 케이옥션 제공
"한 우물을 파면 '진짜'를 만날 수 있습니다. 30년 전 작품을 보니 그동안 한 우물을 파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등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하종현. 그의 작품은 '접합(Conjunction)'이라는 단어로 정의된다.

196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10년 '이후접합'에 이르기까지 현재 그는 한국 추상미술의 중심에 있다. '접합'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하종현은 촘촘히 짜인 마대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방식을 택해 기존 회화의 고정관념을 넘어섰다.

'마대'는 원조 구호물을 담거나 참호에서 모래 주머니로 쓰이던 천으로 배고픔과 전쟁의 상징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1974년에 시작된 접합 시리즈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고, 2010년 '이후접합'에 이르러 작가는 이전의 흙색, 흰색, 짙은 청색 등 중성적이고 어두운 색에서 벗어나 화폭에 다양한 원색을 담는다. 올이 굵은 마대를 뚫고 앞으로 나온 물감을 쓸어내리고 자연스러운 물결을 만드는 과정을 작가는 시각뿐 아니라 물질과의 대화를 나누는 촉각의 과정이라 한다.


하종현의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8월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된 1996년 작품으로 4억1000만 원에 낙찰된 '접합 96-101' 이다.

그는 홍익대에서 받은 퇴직금 2억5000만원으로 어려운 젊은 작가들을 위한 '하종현미술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후배 작가들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 60여년간 치열하게 작업을 지속한 하종현의 실험정신과 열정이 다음 세대 한국 작가들에게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