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이냐, 카레냐... 뭘 비벼도 '밥 도둑'
소스 3총사 셰프의 손맛 유니·중화짜장, 일본식 비프카레... 면과도 찰떡궁합
숙취 풀리는 '마성의 맛' 프렌치어니언스프
맛집 비법 담은 스튜 2종 고기·야채 씹는 맛 가득... 와인 안주로도 좋아
한우미역국 한 숟갈... 엄마 집밥 떠오르네
한식 고기덮밥 맛있게 먹으려면 '매운맛' 필수
"갤러리아에서 가정간편식(HMR)을 만들어? 고급이겠는데."
'명품'하면 떠오르는 갤러리아백화점의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 '고메이 494' 얘기다. 아내는 '갤러리아백화점=명품'이라는 공식을 떠올리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고메이 494'가 내놓은 메뉴를 보면 △서울 여의도 63빌딩 중식당 '백리향'의 유니짜장 △플라자호텔 중식당 '도원'의 중화짜장 △서울 압구정동 맛집 '마르셀'의 비프스튜와 치킨크림스튜 등 유명 음식점의 레시피를 그대로 담았다.
"고민하지 말고 있는 대로 다 먹어보자. 어떤 걸 골라도 내가 만든 것보다는 열 배, 백 배 맛있을 테니까."
손쉽게 몇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는 신이 난 모양이다.
(위쪽부터)유니짜장과 비프카레
■유니짜장 vs. 중화짜장 vs. 비프카레
주말 아침 우리집 식탁에 단출한 소스 부페가 열렸다. '고메이 494' 이름표가 붙은 유니짜장, 중화짜장, 비프카레가 주인공이다. 겉보기에는 모두 특별한 것이 없는 레토르트 제품이다. 전자레인지에서 각각 3분씩 데웠다. 이유 모를 기대감에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그릇에 밥을 담은 뒤 소스를 덜어 조금씩 맛보기로 한다. 첫 번째 선택은 유니짜장이다. "계란프라이를 올리면 좋은데"라고 했더니 즉시 아내에게서 "당신이 하든가"라는 대꾸가 날아왔다. 얌전히 꼬리를 내리고 유니짜장을 서너 숟가락 퍼담는다. 쓱쓱 비벼주니 비주얼도, 냄새도 딱 상상했던 그대로다. 맛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돼지고기가 적지 않게 씹히고, 무엇보다 간이 세지 않아 좋다. 양파의 단맛에 감칠맛과 풍미가 더해지니 꿀맛이다.
백리향에서 유니짜장을 먹은 기억이 없어 비교는 못하겠지만 내 입맛에는 아주 잘 들어맞는다. 시중에서 파는 레토르트 제품 중에는 단연 최고 수준이지 싶다. 아내는 "역시 고급스런 맛"이라며 엄지척을 한다. '입맛이 없다'던 딸아이는 입맛 대신, 말이 없어졌다. 그릇을 싹 비워냈다.
중화짜장은 유니짜장보다 때깔이 더 진하고, 맛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짭쪼름한 춘장과 해산물, 쇠고기가 잘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어지간한 중국집보다 훨씬 낫다. 오징어도 들었다고 돼 있는데 찾지를 못해 아쉽다. 아내는 "이 가격에 맛없으면 반칙이다" "이 정도로 맛있으면 쟁여두고 먹을 만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다음에는 양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프라이팬에 볶아서 먹어봐야지.
마지막은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인 카레다. 버섯과 양파가 전부인 '우리집 카레'와 달리, 쇠고기와 당근, 감자가 넉넉하게 들었다. 덕분에 '씹는 맛'이 있다. 오호라, 끝맛이 살짝 매콤하다. 아내가 딱 원하던 그 맛이다. 아내는 "그래도 오빠가 만들어준 카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아부성' 멘트를 날린다. 입에 침도 안 바른 거짓말이다. 누가 뺏어갈까 연신 카레를 떠먹는 모습을 보면 안다. 이제 그만 '카레 만드는 남편' 자리에서 내려와도 될 성 싶다.
싹싹 긁어 먹었음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아내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조용히 찬장에서 유니짜장과 라면을 꺼냈다. 짜장면을 만들어 입가심을 하기로 한다. "우리 가족 식사량이 있는데 라면 두 개는 끓여야지." 아내가 타박을 한다. "아빠, 나도 짜장면 먹을 거야." 딸이 한 마디를 보탠다. '매콤함'을 외치는 아내의 바람을 담아 고춧가루를 살짝 추가한다. 잠시 후 모두 처음 먹는 듯이 그릇에 코를 박고 있다. '후루룩'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다.
(위쪽부터) 비프스튜와 치킨크림스튜
■비프스튜 vs. 치킨크림스튜(feat. 프렌치어니언스프)
비프스튜와 치킨크림스튜는 모두 (가본 적은 없지만) 맛집으로 유명한 '마르셀'의 레시피로 탄생했다. 평소 먹기 힘든 메뉴여서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진다. 왠지 와인이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아내를 꼬드겼다.
비프스튜는 '갖가지 야채와 토마토소스의 조화 속에 부드러운 식감의 쇠고기를 담았다'는 설명이 붙었다. 실제로 쇠고기에 당근, 양송이버섯, 양파 등이 넉넉하게 들었다. 포장지 뒷면을 보니 쇠고기 함량이 27%를 넘는다. 냄새만 맡고도 단 번에 "이건 내 거"라는 감이 왔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한 숟갈 떠먹으니 제법 잘 어울린다. 불그스레한 국물을 자꾸 보니 밥이 더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연스레 와인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콩과 귀리가 들어간 잡곡밥이라 그런지 비프스튜 만으로는 약간 심심하다. 이럴 때 김치의 도움이 필요하다. 셋의 조합은 한 마디로 끝내준다. 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 모습을 아내가 신기한 듯이 바라본다.
치킨크림스튜는 닭고기와 레지아노 치즈의 풍미, 생크림과 우유의 고소함이 잘 어우러졌다. 레지아노 치즈가 어떤 것인 지는 모르지만, 치즈를 애정하는 아내가 확실히 좋아할 만한 메뉴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다음, 국물만 한 숟갈 얻어 먹었다. '느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고소한 맛이 압도적이다.
아내는 바게트와 함께 치킨크림스튜를 즐긴다. "닭고기 외에도 야채가 실하게 들어서 '씹는 맛'이 남다르다" "와인 안주로 제격"이라는 평가다. 당근에 감자, 양파, 양송이버섯, 샐러리까지 각종 야채가 그득하다. 군침을 흘리며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아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튿날 아침, 아내가 프렌치어니언스프를 준비했다. 속도 풀고 간단하게 요기도 하라는 뜻이다. "프랑스 가정식 스타일"이라는 아내의 설명에도 딱히 흥미는 생기지 않는다. 언뜻 보기엔 허여멀건한 것이 여느 수프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한 숟갈만 뜨고 뛰쳐나갈 요량으로 식탁 앞에 선 채로 숟가락을 들었다.
첫술을 뜨자 자연스럽게 내 엉덩이가 의자를 찾기 시작한다.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는, 난생 처음 맛보는 '마성의 맛'이다. '양파가 이런 맛을 낼 수도 있구나' 싶다. 프랑스산 버터와 치즈가 들었다고 돼 있지만 느끼함 대신,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아내가 호두식빵 한 쪽을 내놓는다. 손으로 식빵을 뜯어 수프에 푹 적셔 먹으니 이건 또 다른 신세계다. 결국 접시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었다. 이제 해장은 프렌치어니언스프에 맡겨도 좋겠다.
(위쪽부터) 고기덮밥과 한우미역국
■고기덮밥(feat. 한우미역국)
아내가 자리를 비운 저녁이다. 아내는 "고기덮밥과 한우미역국을 준비해뒀다"고 큰소리를 치고는 외출했다. 그러나 현실은 '고메이494' 간편식이다.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놓은 게 전부다. 고기덮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서 포장지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밀본'이라는 한식 브랜드의 대표 메뉴라고 적혀 있다.
포슬포슬하게 볶은 돼지고기, (꽈리고추라고 여겼던) 그린빈과 구운 통마늘이 하얀 쌀밥을 뒤덮고 있다. 첫 술을 뜬 후의 느낌은 '분명 맛은 있는데 2%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치와 고추무침을 꺼내 힘을 보태기로 한다. 드디어 맛에 빈틈이 사라졌다. 역시 한국사람에게는 빨간색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의 반복이다. 5분이 채 안 돼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과연 미슐랭가이드 '빕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2년 연속으로 선정될 만하다. 다만, 배가 고파서 혹은 맛이 있어서 '양이 적다'고 느껴진다.
한우미역국은 '우리 엄마의 손맛'에 견줄 만하다. 당초 고기덮밥의 조연으로 등장했지만 한 숟갈 떠먹고는 '따로 한 그릇 더 먹는 것'으로 방향을 바로 바꿨다. 밥을 말아서 김치까지 올리니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나다. 국물 한 방울도 안 남았다.
'고메이 494'의 간편식은 '갤러리아가 명품했다'는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할 듯싶다. 다른 간편식들에 비해 가격대가 살짝 높지만 그만큼 맛있다. 아내는 '값어치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며 간편식이 아닌, 명품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란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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