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 건물 뒤에는 시커먼 박스 모양의 건물이 양쪽 날개를 펴고 우뚝 서 있다. 남산 힐튼호텔이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호텔업계도 피해 가지 못했다. 남산 힐튼을 포함해서 반포 팔레스, 이태원 크라운 등 이름난 호텔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주거시설이나 오피스텔로 탈바꿈하고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시내 중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우수한 호텔을 고급 오피스텔이나 일반 오피스로 바꾸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남산 힐튼호텔 매각은 2014년부터 뉴스에 수시로 오르내리다가 작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매각설이 나돌았다. 결국 1조원 수준에서 매각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되어 기존 호텔을 헐고 새로운 호텔과 오피스 및 소매시설이 포함된 복합시설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은 자신의 분신이 찢겨 나가는 아픔을 토로했다. 건축계에서는 "신라 범종을 녹여 가마솥을 만들겠다는 처사"라며 철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산 힐튼호텔은 왜 헐리면 안 되는가? 이 건물은 현대건축의 세계적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수제자인 김종성이 세계 최고의 건축가에게서 배운 기량으로 설계한 세계적 수준의 현대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의 애환도 서려 있고,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한 서울의 발전상을 대변하고 있어 문화적 가치도 큰 건물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건축 전문가들이야 이 건물의 가치를 익히 알고 있었겠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아무리 에밀레종을 녹여 가마솥을 만들어 설렁탕을 팔아 벼락부자가 된들 녹여버린 에밀레종의 문화적 가치만 하랴! 등록문화재 지정은 대개 50년 이상 경과된 건물을 대상으로 한다. 1983년에 문을 연 남산 힐튼호텔은 2033년에야 지정 대상이 된다. 10년 차이로 문화재 지정이 안 되어 소중한 현대건축 유산을 허물어버려야 하는 제도적 맹점이 한탄스럽다. 50년이 경과하지 않아도 예외를 둘 수 있다지만 민간 건축물의 경우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부동산 개발수익이 눈앞에 보이는데 허물지 말라고 하기가 어렵다.
결국 국민의 문화적 안목과 수준이 높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참고가 될 만한 사례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옥이 있다. 계동 현대사옥 옆에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4층짜리 아담한 이 건물은 현대건축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은 건물이었다. 2013년 공간사의 경영난으로 경매에 나온 이 건물도 철거될 위기에 처했지만, 건축인과 예술인들이 건물의 보존을 위해서 밤낮으로 뛰었고, 결국 매수자의 동의를 얻어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산 힐튼호텔 사례가 중요한 것은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많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공간사옥에서 좋은 선례를 남겼듯이 힐튼호텔도 공간사옥 못지않은 좋은 사례를 남겨야 소중한 건축 유산을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
아무리 개발의 논리와 돈의 논리에 속수무책이라고 할지라도 제발 훈민정음해례본을 근수로 달아 폐지로 팔아버리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축계는 이 문제를 빨리 공론화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개발사업 담당자와 머리를 맞대고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면서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묘안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
류중석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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