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에 포함시키면서 러시아 기업들이 외화채무를 루블화(RUB)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최근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국내 기업들은 사실상 수출대금을 떼이거나 환차손으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7일(현지시간) 자국과 자국 기업, 러시아인 등에 비우호적 행동을 한 국가와 지역 목록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포함시켰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대만, 우크라이나 등도 이 목록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비우호국가 목록에 포함된 외국 채권자에 대해 외화채무가 있는 러시아 정부나 기업, 지방정부, 개인 등은 해당 채무를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수출기업이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수출대금을 받을 때 러시아 은행에 채무자 명의로 된 특별 루블화계좌를 개설한 후 변제일에 러시아 중앙은행 환율에 따라 받을 돈을 루블화로 입금받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로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에 수출한 물품들의 대금을 사실상 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루블화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가치가 폭락하고 있어서다. 국제외환시장에서 전날 미국 달러당 루블화는 155루블까지 치솟았다. 루블화 가치는 연초 이후 미국 달러화 대비 90% 폭락하며 역대 최저치로 곤두박질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등 러시아와 거래를 하거나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은 영업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됐다. 특히 수출대금이 문제다. 한 대형 제조업체 관계자는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은 루블화로 거래했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인해 새로 받을 타격은 없지만,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의 피해가 있다"며 "러시아 수출대금이 많지는 않으나 이를 루블화로 받게 되면 손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지역에 가전공장을 운영 중이며 LG전자도 모스크바 외곽에 TV와 세탁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러시아를 비롯해 주변국에서 약 4조원대 매출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며, LG전자는 지난해 3·4분기까지 약 1조3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글로벌 시장 전체로 봤을 때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러시아에서 약 38만대의 차를 판매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대러시아 무역·투자 민관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업종별 영향을 파악하고 있으며 결과에 따라 대응조치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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