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15일 부산 기장군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열린 제9회 전국명문고야구열전에 전원이 머리를 박박 밀고 출전한 강릉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사진=박범준기자
전국명문고야구열전에 출전하는 팀들은 모두 한 숙소를 쓴다. 며칠 전 이른 아침 숙소 앞에서의 일이다. 입구 쪽으로 강릉고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한결같이 박박 민 머리모습이었다.
처음 보았을 땐 웃음이 나왔다. 요즘 시대에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러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학생야구니까. 나중에 야구장에서 만나서 물어보니 대회 전 강릉에서 3학년이 주도로 “떠나기 전 머리를 밀자”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강릉고는 몇 해 전만해도 선수 모집이 제대로 안 돼 애를 먹은 팀이다. 그런데 2020년 강원도 고교야구팀 가운데 처음으로 전국 대회 우승(대통령배)을 차지했다. 지난해엔 황금사자기와 전국체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제 강릉고는 전국 최강의 하나로 손꼽힌다. 2년 사이 그야말로 괄목 성장이다.
전국명문고야구열전에는 2020년 7회 대회 때부터 참가했다. 강릉고는 에이스 최지민(KIA)을 앞세워 예선리그 2전 전승으로 4강에 진출했다. 경남고에 덜미를 잡혀 결승 무대를 밟진 못했다.
8회 대회 땐 1승을 거두고도 우천으로 인한 추첨 패로 4강 직전에 탈락했다. 올해 역시 추첨 운이 좋지 않았다. 첫 경기서 전주고에 대승을 거두었지만 또 한번 봄비와의 악연에 고배를 들었다. 추첨 패로 4강 진출에 실패.
전국명문고야구열전서 거둔 통산 성적은 4승 1패(추첨 제외). 어느덧 강릉고는 광주일고, 경남고, 경북고, 덕수고 등과 함께 교교야구 최강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박 민머리와 팀 성적은 아무런 상관없다. 그러나 강릉고 선수들의 삭발 투혼에서 의지와 성취의 인과관계는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다. 길은 뜻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곧이어 서울고 선수들이 나왔다. 그들의 머리 스타일은 강릉고 선수들과 완연히 달랐다. 대부분 머리를 길게 길렀고, 간혹 연예인 스타일의 파마도 눈에 띄었다. 수초 전에 박박 민 머리를 보았기 때문일까. 둘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다.
강릉고 선수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용수철이라면 서울고 선수들은 여유 있고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서울고는 몇 해 전의 강릉고와 달리 전국에서 야구 영재들이 몰려든다. 덕수고, 야탑고, 유신고와 함께 중학교 선수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학교다.
그런데도 2017년 대통령배 우승 이후 한 번도 4대 메이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머리 스타일과 우승에는 구체적 함수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고 선수들의 머리 스타일에 자꾸 눈길이 갔다.
프로야구 한 스카우트는 “얼마 전 서울고 선수들이 여럿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사회인 팀 선수들인 줄 알았다. 몇몇은 목에 금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고교선수들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며 코를 찡긋거렸다.
그동안 야구 취재를 하면서 본 가장 고교야구다운 팀은 과거 충암고와 부경고(전 경남상고)였다. 마치 일벌집단처럼 원팀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두 팀은 성적도 좋았다. 스타일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고교야구는 교교야구다웠으면 좋겠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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