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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 갤러리 현대, 사빈 모리츠 '휘황한 달'展

[이 전시] 갤러리 현대, 사빈 모리츠 '휘황한 달'展
사빈 모리츠의 사계 시리즈. 왼쪽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 (2021) /사진=갤러리현대
그림은 흐린 청동 거울과 같다. 화가가 정한 프레임 안엔 그저 색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는 듯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시간과 공기가 담겨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은 작가가 그 앞에서 움직인 순간과 마음을 작품 속에서 찾아낸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비춰본다.

동독 출신의 작가 사빈 모리츠(53)는 자신의 그림에 자연과 시를 담았다. 그는 화업 초기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그려냈지만 점차 추상의 세계로 나아갔다. 사람이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하늘 위 달이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듯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하고 사라지는 세상만물의 변화하는 기운을 포착하고자 했다. 이 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꼽히는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사빈 모리츠의 전시 제목이 '휘황한 달(Raging Moon)'이 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사빈 모리츠가 직접 뽑은 이 전시 제목은 20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딜런 토마스의 시 '나의 기예 또는 우울한 예술로'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이 전시] 갤러리 현대, 사빈 모리츠 '휘황한 달'展
사빈 모리츠 /사진=갤러리현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갤러리현대 전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사빈 모리츠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제작한 구상과 추상 회화, 에칭 연작 등 총 50여점이 소개됐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가 지난해 그려낸 사계(四季) 4부작이다. 무아지경이 느껴지는 역동적인 붓질 속에 여러 색선들이 원초적으로 교차됐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계절의 기운들을 표현해내고자 했다. 지하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가 표현한 발틱해 4부작과 나무 4부작, 바람 4부작 등이 반기고 이어 2층으로 올라가면 그가 이전에 수행했던 구상과 추상의 실험작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전시] 갤러리 현대, 사빈 모리츠 '휘황한 달'展
사빈 모리츠 '봄' (2021) /사진=갤러리현대
사빈 모리츠는 "나의 회화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나 역시 예측 불가능했던 부분이었고 점진적으로 추상미술로 전개됐는데 추상회화는 풍경화, 정물화, 역사화 같은 구상 회화와 달리 어떻게든 시간과 존재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며 "작업 초기부터 수행해왔던 질서와 안정을 의미하는 숫자 '4'에 대한 직관적 탐색의 결과물이 작업에 반영됐다. 정사각형과 동서남북, 바람의 네 방향, 사계절, 고대 서양의 4원소의 영향을 받았다. 추상화는 거대한 무(無)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혼돈에서 질서로 회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전시는 다음달 24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