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부회장 가석방 후 경영참여 못해
파운드리·스마트폰 점유율 하락 등
총수 부재로 초격차 전략 곳곳 균열
韓경제 미래 먹거리 진출에도 암운
"文정부 석탄일 사면" 목소리 커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2020년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 사면 카드를 쓸 수 있는 오는 5월 8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사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복권이 이뤄졌는데도, 이 부회장만 '패싱'하는 상황에 대해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삼성 내부에서는 '위기론'마저 나오고 있다. 총수의 오랜 부재로 '초격차'를 넘어 '뉴삼성'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옥중생활에서는 풀려났지만, 여전히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가 부진한 것도 이런 위기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섯번 연속 '이재용 패싱'…위기 현실화
24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석탄일을 앞두고 종교계와 시민사회에서 문 대통령이 임기 말 특별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5월 9일이 문 대통령 퇴임일이기 때문에 석탄일이 임기 중 사면권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재계도 석탄일 사면이 이뤄진다면 이 부회장이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된 총 다섯번의 사면에서 이 부회장은 항상 제외됐다. 시민단체 등은 구글이나 애플의 예를 들어 전문경영인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회의적이다. 단기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전문경영인은 장기적 비전으로 투자결단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종합적 접근'이라는 정책연구에서 해외 학자들의 연구사례를 인용, "창업주 일가는 다른 어떤 주체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투자한다"며 "이는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 사면이 매번 좌절되면서 삼성전자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해 투자를 집중하고 있지만 대만 TSMC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2020년 파운드리 글로벌 시장점유율도 TSMC 54%, 삼성전자 17%로 2019년 53%, 18%에 비해 격차가 더 벌어졌다. 스마트폰도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는 미국 애플과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중국 업체 사이에 끼여 작년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20% 아래로 떨어졌다.
■한번 삐끗하면 '나락'…골든타임 끝나간다
삼성전자가 올해 1·4분기 77조원의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미래 전망은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미 증시에서부터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2020년 45% 상승했던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3% 하락한 후 올 들어 13% 넘게 곤두박질쳤다. 작년에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18조원이나 팔아 치웠으며 국내 기관도 14조원을 매도했다.
이는 총수의 부재가 장기적인 기업성과에 치명적이라는 점을 투자자들이 이미 학습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SK는 최태원 회장이 수감됐던 2013~2015년 12개 상장사 매출이 47조원에서 39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상, 인수합병(M&A) 등 주요 안건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 총수가 나서지 않으면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서 "신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육성하는 일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표적 해외 네트워킹 무대인 소비자가전쇼(CES), 선밸리 콘퍼런스, 다보스포럼 등에 가더라도 기업을 대표하는 공식 직함이 없으면 장기협력, 투자 및 M&A를 논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해외출장에 제약이 있고, 등기임원이 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고작 조언자 역할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경제인 사면은 개인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국익을 가장 앞에 놓고 내린 결정이었다"면서 "국내 최고 기업의 총수에게 사면을 통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정권 마지막을 의미 있게 매듭 짓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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