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서초포럼] 리어왕의 비극, 그 시작은 '차별'

[서초포럼] 리어왕의 비극, 그 시작은 '차별'


자연이여, 너는 나의 여신이다.
너의 법칙에 나는 봉사할 작정이야.
무엇 때문에 빌어먹을 습관에 복종하고,
세간의 쓸데없는 소리에 구속되어,
재산상속권을 박탈당해야 한단 말이냐?


왜 서자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냐?
어째서 비천하다고 하는 것이냐?
('리어왕' 1막 2장)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리어왕의 충신 글로스터경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는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과 사회에서 홀대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형보다 모자란 것이 없는데도 사회적 편견과 관습의 희생자가 된 그는 자신이 사회적 제도가 아닌 자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아버지와 형 에드가에게 덫을 놓고 음모를 꾸미는 주요 이유다. 그는 자신을 차별하는 가족과 사회에 대해 반발하여 저지른 죄로 인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다.

에드먼드의 아버지 글로스터경도 에드먼드의 출생을 겸연쩍어 하면서 비하하는 말투로 표현한다. 그는 에드가와 에드먼드 둘 다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은 달리한다. 에드먼드가 자신의 살길을 찾아 선택한 행동은 적자생존의 다윈주의식 생존방법을 택한 것이다. 건전한 가족으로서 화합의 생존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에드먼드의 행동에는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

리어왕의 어리석은 사랑 게임이 초래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리어왕이 셋째 딸 코딜리어를 차별적으로 사랑해서 야기된 비극이다. 다른 두 딸 고너릴과 리건은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사랑의 결핍을 심각하게 경험했다. 코딜리어만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사랑이 결핍된 그 둘은 필사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구했다. 편견 속에 성장한 이들은 그냥 악의 화신이 아니라 불공평한 양육 과정의 산물이다.

부모로부터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은 고너릴, 리건 그리고 에드먼드는 보통 이 작품의 악인으로 통한다. 그들은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들을 음해한다. 하지만 모든 비행 청소년의 경우처럼 이들에게도 이러한 질문이 필요하다. 그것은 본성에서 비롯되었나? 아니면 양육 과정에서 생긴 것인가? '리어왕'의 경우 이들의 악행은 타고난 것인가? 작품의 후반에 이르러, 위의 세 사람은 사회의 편견과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음이 드러난다.

가정의 달이다. 부모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부모는 무릇 자식들을 차별하지 말고 공평하게, 부모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함을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말해준다.
우리는 아이들을 결코 사회적 편견이나 능력을 기준으로 서로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리어왕이 말하듯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똑같은 조건으로 태어났다-"우린 모두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어(We came crying hither)."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인정하고 아껴주는 관계가 바로 가족임을 되새겨보자.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의 따뜻함을 떠올려 본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