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척이나 예쁜 어느 날 오후였다. 아마도 2005년 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 민지는 하교하던 중, 우리 집 대문에 묶여진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덩달아 얼떨떨해진 나는 “무슨 강아지야?” 하며 묻는다. “엄마, 이 강아지를 누가 우리 집 대문 앞에 버리고 갔나 봐” 하며 슬프면서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대답한다. 잠시 후 민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이 강아지를 우리가 키우면 안 될까?”였다. 단 한 번도 강아지를 키울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조르는 민지를 향해 결단을 내렸다.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해본 후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키우자고…
그날부터 그 자그마한 강아지는 우리 애견이 되고 말았다. '딸기'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날마다 딸기와의 일상이 즐겁기만 한 두 딸들은 대소변을 못가리는 딸기를 훈련시킨다며 진땀을 흘렸지만 여전히 아무데나 배설물을 갈겨대는 딸기는 식탐까지 많아 식탁 위에 있는 음식에게도 손을 데는 말썽꾸러기가 되어갔다. 나에게는 집안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딸기가 가엾게도 죽은 것이다. 잠시 열려진 문으로 밖에 나갔다 온 딸기는 뭘 잘못 먹었는지 이상한 행동과 증상을 보이며 괴로워하더니 잠시 만에 죽어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틈도 없이 허망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슬픔은 두 딸의 몫이 되어버렸고, 특히 사춘기인 우울한 날을 보내는 민지를 달래기 위해 그 시대 최고의 애장품인 엠피3를 사줘가며 조금씩 회복되기를 도왔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싶은 그 다음 해에 또 다른 새하얀 강아지가 우리에게 오게 됐다. 아는 지인이 키우기가 버거워 데려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새하얀 강아지를 데려오고 말았다.
그렇게 또 새로운 애견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녀석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왔지만, 우리 가족은 아무런 영문도 없이 다들 '딸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제2의 딸기'가 된 셈이다. 딸기는 외모와는 다르게 소심하고 예민한 녀석이었다. 계단 소리만 조금 나도 짖어대고, 낯선 사람이 오면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기까지 하는 것이다. 갈수록 불편함을 느끼며 점점 후회의 감정까지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딸기를 돌보는 손길은 모두 두 딸의 몫이 되어 있었다.
그럭저럭 몇 년이 흘러 민지는 다른 지방의 대학 진학으로 집을 떠나버리고, 어쩌다 가끔 집에 들러 딸기를 돌보긴 했지만 처음의 그 새하얀 강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저분하고 성질까지 고약한 강아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후 작은딸 현지마저 고3이 되고 대학 진학으로 다른 지방으로 또 가버리자 거의 혼자 방치된 유기견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노년의 3대 고통인 가난, 질병 그리고 고독이란 말이 딸기에게도 슬프게 적용되고 있었다. 그 사이 딸기는 차츰 더 노쇠해져 시력마저 나빠져서 이 모퉁이 저 모퉁이를 부딪치기 일쑤였고, 치아는 다 빠져버려 일반 사료를 먹을 수가 없어 갈아서 먹여야 했고, 치매인 듯 늘 살던 집안에서도 방향을 잃어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대소변까지 딸기의 독방이 되어 버린 현지의 방바닥에 흩어 놓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숨 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자리에서 쳇바퀴 돌 듯 살았고, 딸기는 그냥 혼자서 버티고 있었다.
하루는 직장에 다녀온 피곤한 몸으로 현관문을 열어보니, 방안은 온통 딸기의 대변으로 범벅이 되어 발을 디딜 수가 없었고, 화장실 안은 여러 차례 누었던 소변 냄새로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 시기가 장마철이라 악취는 두 배 이상으로 심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또다시 부질없는 후회를 하며, 이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모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라는 것을 처음에는 왜 몰랐던 것일까?
이러한 형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민지는 드디어 딸기를 원룸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했다. 임대계약서에 명시된 ‘애완견을 키울 수 없음’이라는 조건을 무시한 채로......
딸기가 떠나간 그날, 나는 비로소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허전함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딸기는 나의 곁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민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민지를 배웅했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민지를 꼬리치며 반갑게 맞이하는 정다운 딸기가 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평생 가본 적 없었던 광안리의 모래밭도 내달려보고, 동물병원도 드나드는 호사스러움도 누리게 되었다. 잠시만이긴 하지만 시골 개가 도시 개가 된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차례의 위험한 고비를 겪었던 노견이라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었지만, 2월의 늦겨울 바람이 차갑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평상시보다 늦게 퇴근하는 민지는 현관문을 열어도 반기는 기척이 없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아악, 딸기야, 왜 그래?” 흔들어 보았지만 이미 딸기는 그 차가운 화장실의 타일 바닥에서 딱딱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겨우 민지의 원룸으로 옮겨간 지 백일 정도 된 날이었다.
슬픔이 넘쳐 눈물겨워 하면서도 마지막 딸기의 장례식은 치러주었다.
그것 또한 민지와 현지가 치러준 것이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하루종일 내렸다. 하늘도 아는 모양이다. 그 슬픈 딸기의 죽음을......
이렇게 제2의 딸기도 떠났다. 우리와 15년 동안이나 같이 살다가 떠나 간 것이다.
'민지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민지 원룸으로 옮겨간 것일까'라는 허무한 생각과 함께 진작 좀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부질없는 슬픔과 아련한 아쉬움이 뒤범벅된 복잡한 감정들이 뒤얽히고 있었다.
이 큰 슬픔 이후 민지에게는 다시 사춘기의 우울감이 스며들고 있다. 매일 딸기 사진을 보며 눈물 흘리며 혼자서 슬픔 속에서 지내다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한다. 떠나간 딸기를 잊을 수가 없어 선택한 것이다. 주말마다 여러 강아지들을 만나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다 얼굴이 길쭉하고 몸도 기다란 어떤 강아지를 임시보호하게 되었다. 나는 미리 선언했다. 이제 강아지 키우는 일은 하지 말자고. 정들면 정떼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고.
반려견을 키우는 국내 인구수가 1500만 명을 훌쩍 넘은 지금, 우리 주위에는 애견 동반 가능 식당이나 카페, 애견 놀이터 등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애견미용사라는 직업도 인기직종이 되었고, 애견 동반 여행 프로그램까지 생기는 이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책임감 없는 행동 때문에 매년 버려지는 유기견 수는 9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달면 키우고 쓰면 버리는 그런 정신 나간 인간들이 생기지 않길 바래본다.
그리고 2~3개월 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다행히도 나타나 길쭉한 강아지는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민지는 도저히 못 보내겠다며, 본인이 키우겠다며 보호소에 연락을 해버렸다. 이미 뗄 수 없는 정이 든 것이다. 반대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길쭉한 강아지는 우리의 세번째 애견이 되고 말았다. '오디'라고 이름 지었다. 오디는 길쭉한 몸매에 검은색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운 외모에 점잖은 성품을 지닌 아주 매력적인 강아지였다. 그윽하게 쳐다보는 눈빛을 보며 강아지계의 아나운서라고 내가 말할 정도로 우아함까지 겸비한 매력덩어리다. 자꾸만 딸기와 비교가 된다. 정반대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얌전하고 착하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존재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순간 오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오디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오디를 바라보다 보면 딸기의 단상이 떠올라 가슴 찡할 때가 있다.
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랑해주지 않았을까 죄스러운 마음이 뭉클하게 떠오른다. 마치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때늦은 후회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뭘까? “딸기야, 정말 미안해.”
어느덧 오디가 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었다. 자주 보지 않는데도 나를 기억해 반겨주는 게 신기하고, 은은한 애교로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지금처럼 우아한 자태 보여주며 건강하게, 행복하게 동행하며 살자꾸나.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거 오디, 너 알지?"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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