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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백락일고'와 지식재산

[차관칼럼] '백락일고'와 지식재산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주나라 때 한 말장수가 훌륭한 말 한 필을 시장에 팔려고 내놨으나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아 최고의 전문가로 통하는 '백락'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백락'이 감탄하는 눈길로 찬찬히 그 말을 살펴보자 주변 사람들이 그 말을 구하기 힘든 준마라 여겨 말의 값이 순식간에 뛰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아무리 높은 가치를 가져도 그 진정한 가치를 평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에 비로소 알려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사회의 모든 쓰임은 그 가치에 대한 평가를 전제로 한다. 신용이나 담보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기관의 대출이 그렇고, 직무능력에 대한 평가에 따라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그러하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내가 생각하는 물건의 가치와 돈으로 환산된 시장가격을 비교하듯, 우리는 매일 크든 작든 일정한 가치평가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가치평가의 어려움이 유독 큰 분야가 바로 지식재산이다. 부동산 등 유형자산은 시장경제의 원리인 공급과 수요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돼 거래되나, 무형자산인 지식재산은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어렵고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거래도 활발하지 않아 시장가격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특허청은 전문 평가기관을 지정해 가치평가를 진행하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신용과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사업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허청은 현재 지정돼 있는 23개 전문 평가기관의 인력이 지식재산 분야에서 '백락'과 같은 훌륭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맞춤교육과 품질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특허 중심에서 출원까지 포함하도록 하고, 대상도 상표까지 확대해 가치평가 가능범위를 넓혀보고자 한다. 또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평가모형을 개발, 평가기관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최근 5개 기관이 가치평가 전문기관으로 신규 선정됐는데 23개 기관이 신청해 지식재산 가치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기존의 특허법인, 지식재산 서비스 기업뿐만 아니라 시중은행 3개가 선정돼 금융권의 지식재산 금융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금융 규모가 6조원을 돌파했다. 우수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특허를 통해 6조원을 빌리거나 투자받은 것이다. 특히 지식재산을 담보로 하는 대출은 2018년 3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9000억원으로 불과 3년 사이에 6배 이상 증가했다.
더욱이 지원받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기업에 대한 지원이 78%에 달해 당초 의도대로 우수한 지식재산을 보유한 저신용 창업·중소기업 위주로 자금이 조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지식재산 가치평가를 통해 조금씩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지식재산 금융은 더욱 성장할 것이며, 지금의 추세이면 오는 2026년에는 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우리 회사에 100억짜리 특허가 몇 건 있고, 5억짜리 상표가 몇 건 있으니 얼마 대출해주세요"라고 우리 기업들이 금융기관에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인실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