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 스틸컷 © 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공동경비구역 JSA’로(2000)로 스타덤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로 이어진 복수 3부작과 ‘박쥐’(2009) ‘아가씨’(2016) 등과 같은 청소년관람불가등급 영화에서 인간의 욕망과 사랑, 복수와 같은 진폭 깊은 감정을 강렬한 방식으로 표현해왔다.
이에 박찬욱의 영화에는 ‘폭력과 섹스, 19금’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21일 '헤어질 결심' 언론시사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지적도 오랜만에 15세 관람영화를 선보였다는 것이었다.
박 감독은 앞서 칸영화제에서 자신은 “언제나 로코(로맨틱 코미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번엔 “그냥 멜로가 만들고 싶었다”며 “사랑만큼 인간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경험은 드물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로맨스”라고 말했다. 박감독은 이날도 ‘헤어질 결심’에 대해 “인생을 살아본 사람만이 이해 가능한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박 감독의 말은 과장도 농담도 아니다. 박해일 탕웨이가 주연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식 멜로영화다. 수사극이면서도 멜로극인 이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두 남녀의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와 관객을 덮친다. 스크린 속 두 남녀에게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랄까. 특히 가수 정훈희·송창식이 부른 엔딩 테마곡 ‘안개’와 어우러져 애틋하면서도 가슴이 미어지는 묘한 감흥을 준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도시에서 시작된 영화는 곧 하늘을 찌르는 암봉의 살인사건과 산 속처럼 복잡하고 쉬이 드러나지 않는 두 남녀의 마음의 파고를 거쳐 기암괴석을 품고 있는 드넓은 바다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필름누아르에서 흔히 다뤄왔던 범죄와 연루된 매혹적인 여자를 사랑하게 된 형사의 이야기로, 박해일이 연기한 형사 캐릭터는 기존의 한국영화 속 형사와 180도 다른 옷차림과 말투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그는 밀항한 조선족 여자 서래에겐 폭력적인 죽은 남편과 달리 기존에 보지 못한 ‘품위있는 남자’로 각인된다. 그런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게 분명해 보이는 해준은, 잠복근무를 빌미로 그녀의 방을 엿보고, 피의자 취조를 하다가 고급 초밥을 주문해 마치 데이트하듯 식사한다. 남자의 호의가 싫지 않은 여자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가련하고 불쌍한 여자인지 아니면 남자를 ‘붕괴’로 이끌 ‘팜므파탈’인지 헛갈리게 한다.
범죄수사극의 외피를 쓴 이 멜로드라마는 사랑 표현 또한 독특하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휴대폰을 깊은 바다 속에 던져라”는 남자의 대사는, 여자에겐 반복해 듣고싶은 사랑 고백이며, 죽은 남편의 시체를 질질 끌어다가 물로 씻기는 여자의 행동은, 피 냄새를 역겨워하는 연인을 위한 그녀만의 배려다.
피의자를 호송하는 경찰차 안에서 수갑을 찬 남녀의 살짝 포개진 손은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는 설렘의 순간이며, 립밤을 발라주는 여자의 행동은 남자와 키스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21일 언론시사 기자간담회에서 “탕웨이의 ‘독한 것’ 대사에 웃음이 안 터져서 상처받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이후 오는 29일 국내 개봉하는 이 영화를 “선입견 없이 봐달라”고 당부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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