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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다들 "망한다"할 때 끈질긴 투자로 12년 만에 흑자 시동


쿠팡, 다들 "망한다"할 때 끈질긴 투자로 12년 만에 흑자 시동
쿠팡 로고와 태극기가 걸려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김범석 쿠팡 의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완전히 새로운 유통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것입니다. 직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3만9000명을 새로 채용하겠습니다."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중구 웨스틴호텔 쿠팡 기자간담회.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발표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택배업체를 거치지 않고 24시간 이내 자체 직원이 직접 물건을 배송하겠다는 선언에 택배업체들과 대형마트의 반응은 비슷했다. 대다수가 "불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오래가지 못하고 망할 것"으로 봤다.

쿠팡은 창립 후 12년간 '마이웨이'를 걸었다. 전국 물류 인프라에 수조원을 투자, 대규모 적자를 감수해왔다. 하지만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 론칭 8년 만에 '반전 스토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지난 11일 2·4분기 실적 발표에서 전년과 비교해 영업적자 규모를 10분의 1 수준인 847억원(6714만달러)으로 줄인데 이어 2014년 로켓배송 런칭 후 처음으로 835억원 (6617만달러)규모의 조정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순이익을 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상장 후 매 분기 2500억~6000억원의 손실을 낸 쿠팡의 적자 규모도 처음으로 1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위기설 돌 때마다 보란듯 물류 투자 늘렸다
업계에서는 '이커머스 생태계' 혁신을 쿠팡의 약진 비결로 꼽는다. 경쟁업체들이 기존 오프라인 점포영업에 안주하고, 복잡한 거미줄 유통망을 거쳐가는 느린 택배 배송에 안주할 때 전에 없던 과감한 투자로 시장이 움직이는 법칙을 바꿨다는 것이다.

쿠팡은 2014년부터 8년간 전국 30개 지역에 물류센터 등 인프라를 100개 이상 구축했다. 국민의 70%는 물류센터 10km 반경 안에 거주 중이다. 여러 물류 거점에서 직매입한 제품을 고객에게 빠르게 직배송하는 방식으로 기존 택배업계의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이고 있다.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하기 전에는 없던 일이다.

새로운 배송모델 도입에 따른 투자 확대로 쿠팡의 영업손실은 2016년 5652억원, 2018년 1조970억원 등으로 빠르게 늘었다. 중간에 "투자금이 끊긴 것 아니냐"는 위기설도 나왔다. 그럴 때면 쿠팡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다. 세쿼이어캐피탈, 블랙록 등 글로벌 금융기관으로부터 2014~2018년까지 34억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2019년엔 '로켓프레시' 새벽배송을 론칭했다. 지난해 3월 뉴욕증시 상장 이후 1조8000억원을 조달해 신규 물류 인프라를 경남 창원·광주광역시 등 지역으로 넓혔다.

쿠팡의 전국 물류 인프라 규모는 2020년 말 70만평에서 지난해 말 112만평으로 늘었다. 서울 여의도 면적(87만7250평) 보다 28% 넓다. 직원 수는 2015년 5465명에서 지난해말 6만5772명(국민연금 가입자 수 기준)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에 이은 국내 3위 고용 창출 규모다. 직원의 업무 강도를 낮추는 한편 물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쿠팡은 2020~2021년 물류와 자동화 기술에 1조2500억원을 투자했다. 집품과 운반 작업을 담당하는 무인운반 로봇(AGV), 제품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오토 소터 같은 자동화 IT기술을 도입해 로켓배송 물량은 늘리고 비용 절감을 노린 것이다.

■8년간의 투자 끝에 '효자' 된 로켓배송
쿠팡이 새롭게 진출하는 지역은 '쿠세권'(로켓배송이 되는 권역)으로 변신하고, 신규 소비자들은 쿠팡의 충성 고객이 됐다. 쿠팡에 따르면, 지난해 로켓배송 주문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인천 청라였다. 뒤이어 경기 남양주 다산동과 경남 양산 물금읍이 상위 3개 지역으로, 새롭게 주거 단지가 조성돼 빠른 배송 인프라가 절실한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경쟁업체들도 수년 전부터 새벽배송을 운영 중이지만 가장 저렴한 가격(1만5000원 이상 구매)으로 전국 단위의 무제한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쿠팡이 유일하다. 쿠팡에서 한번이라도 제품을 산 고객은 1788만명, 유료 와우 멤버십 회원은 900만명이 넘는다. 넷플릭스(500만명), 멜론(500만명) 등 다른 구독 서비스 유료 회원의 2배 이상 수치다. 올 2·4분기에도 쿠팡은 유료 멤버십 회원의 무료배송과 무료 비디오 시청(쿠팡플레이), 특별 할인 등에 65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같은 '규모의 경제' 효과로 쿠팡은 지난 1·4분기 로켓배송, 로켓프레시 등 상품 커머스 부문에서 처음으로 조정 EBITDA 순이익(238만달러)을 냈다. 2·4분기 순이익 규모는 978만달러로, 3개월 만에 2.4배 늘었다.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로켓배송 모델이 오랜 투자를 거쳐 수익을 내는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쿠팡의 성장은 오프라인 판로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온 전국의 전통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줬다. 쿠팡이 최근 발간한 ‘2022년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소상공인 수는 15만7000명이다. 쿠팡의 매출은 2019년 말 7조1530억원에서 지난해 22조2257억원으로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소상공인들의 거래금액과 매출도 2배 이상 늘어났다. 쿠팡은 지난해만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5800억원을 투자해 판로확대를 지원했다.

쿠팡은 오는 2024년까지 신규 물류센터를 추가 건립하는 투자를 지속한다. 쿠팡은 한국 시장이 세계 3위 규모의 이커머스 시장이며 2025년 2900억원 달러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추가 성장 기회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이번 2·4분기 실적 발표에서 "기술과 프로세스 혁신을 추구해 고객에게 놀라운 경험을 창조하겠다"며 "고객이 관행처럼 받아들이는 ‘트레이드 오프’를 깨는 노력을 더욱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