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사모펀드의 모든 것
론스타에 외환銀 넘어가자 법 개정
작년 라임사태 계기로 투자자보호 강화
2004년 2개 → 작년말 1060개로 급증
약정액도 116조원으로 290배 뛰어
M&A 대어 나올 때마다 GP들 참전
올해 인수규모만 5조원 돌파 추정
MBK파트너스 아시아 1위에도 올랐지만
글로벌 순위 90위권… 경쟁력 키워야
김기석 경제부문장
국내 3대 부자를 꼽으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내 재계 순위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국내 부자 3명은 예상과는 다르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이 1위에 올랐고, 이재용 부회장은 2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3위다. 김 센터장이 이 부회장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도 의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3위인 김 회장에 대한 관심이 더 클 것 같다. 김 회장은 물론 MBK파트너스가 어떤 회사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국내 및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기업이다. 남의 돈을 모아서 투자를 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재벌에 오른 것이다.
'사모펀드'.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은 사실 우호적이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모펀드 관련인들은 대부분 '기업 사냥꾼' '돈 밖에 모르는 냉혈한' 등으로 그려진다. 라임펀드와 옵티머스펀드 사태 등으로 일반투자자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더해지면서 부정적인 시각은 한층 강해졌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산업계에서 사모펀드는 자금을 선순환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7~10년 동안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자본으로 성장성이 있는 기업을 찾아내 투자,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최근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대형 인수합병(M&A)은 대부분 사모펀드가 주도하면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후연금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도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연말 국민연금의 사모펀드 투자규모는 34조5432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조297억원(25.6%)이나 늘었다.
이에 국내 사모펀드 시장과 특히 급성장하고 있는 사모펀드를 살펴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내 GP에 대해 알아본다.
■ 국내 사모펀드, 시작은 2004년
2003년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전격 인수하자 금융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은행이 외국자본에 넘어갔다는 충격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관련법인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에 나섰다. 외국계 자본에 맞서기 위해 사모펀드 시장 형성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1998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사모펀드 시장이 개정안으로 제도적인 기틀이 마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자본시장법 및 하위법규 개정안'을 의결하고 사모펀드 제도를 개편했다. 개인투자자들에 큰 피해를 준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개정안에 따라 기존 운용목적에 따라 분류하던 사모펀드는 일반투자자와 기관투자자 등 투자자 범위를 기준으로 변경됐다. 이전 사모펀드는 운용목적에 따라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으로 구분했지만 법 개정으로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분류하고, 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반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 보호장치를 대폭 강화했다. 기관전용 사모펀드에는 금융회사와 연기금, 공제회, 일정 요건을 갖춘 주권상장법인과 1년 이상 500억원 이상의 금융투자상품 잔고를 갖춘 비상장법인과 금융권 재단 등만 투자를 할 수 있다. 사실상 개인은 일반 사모펀드에만 투자할 수 있는 셈이다.
■ 급성장하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사모펀드 시장, 특히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및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 2개에 불과하던 PEF는 지난 2021년 말 1060개로 급증했다. 약정액은 4000억원에서 116조1000억원으로 290배나 늘었다. 기관전용 사모펀드 1060개 가운데 일반 PEF가 860개로 81.1%를 차지했고 기업재무안정 PEF 79개(7.5%), 창업벤처전문 PEF 118개(11.1%) 등이다. 기업재무안정 PEF는 일반 PEF와 달리 재무개선기업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재무구조개선 기업의 주식뿐만 아니라 부실채권, 부동산 등 고정자산에 투자가 가능하다. 2016년 도입된 창업벤처전문 PEF는 창업 및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PEF다. 소득공제 등의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운용사(GP)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자료가 공개되기 시작한 2007년 35개에서 2021년 394개로 늘어났다. GP로는 M&A 시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IMM PE 등이 있다.
GP 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지난 연말 약정액을 기준으로 MBK파트너스가 11조2221억원으로 1위에 올라 있다. 이어 한앤컴퍼니(9조212억원), IMM인베스트먼트(5조3289억원), IMM PE(5조2975억원)의 순이다. 이외 스틱인베스트먼트와 연합자산관리, 한국산업은행, 맥쿼리자산운용, VIG파트너스 등의 약정액이 2조원을 넘었고, JKL파트너스와 한국투자PE 등의 약정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 사모펀드 운용사들, M&A도 쥐락펴락
GP는 국내외 M&A 시장에 적극 나서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M&A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GP들의 인수합병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발생한 대형 M&A에는 GP가 대부분 포함돼 있다. 비교적 인수합병 규모가 큰 PI첨단소재와 SKC 필름사업, 쌍용차 등의 매각을 GP들이 주도한 것이다.
글로벌 운용사인 베어링PEA는 지난 6월 폴리이미드 필름 제조사인 PI첨단소재를 1조2750억원의 인수키로 했다. 입찰에는 롯데케미칼과 KCC글라스 등이 참전했지만 결국 글랜우드PE가 보유한 54.07% 인수전에서 승자가 됐다. 한앤컴퍼니는 올해 6월 SKC 필름사업을 1조6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고 안마기로 유명한 바디프랜드는 스톤브릿지캐피탈과 2021년 설립된 한앤브라더스로 인수됐다.
상하이차, 마힌드라 등에 인수됐다 다시 매물로 나온 쌍용차는 파빌리온PE가 포함된 KG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외 MBK파트너스는 온라인교육업체 메가스터디교욱 인수를 검토 중이고 카카오모빌리티 인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매트리스업체 지누스를 8800억원에 사들이고, 두산이 반도체 검수기업인 테스나를 4600억원에 사들이는 등 기업도 M&A 시장에 참전하고는 있지만 GP의 위세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올해 국내 기업 M&A 시장에서 GP에 의한 인수규모가 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디프랜드와 PI첨단소재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PE간 인수합병 거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M&A 시장에서도 GP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략적 투자자문사인 워포드 어드바이저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6820억달러에 달하던 글로벌PE, 벤처캐피털 거래액은 올해 상반기 1조500억달러로 증가했다.
워포드 어드바이저의 크리스 워포드 대표는 "2019년 26%수준이던 글로벌 M&A에서의 GP 점유율은 최근 1개월 기준으로 37%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 해외무대 진출, 이제 시작이다
글로벌 자본에 알짜배기 국내 기업을 뺏기던 상황은 점차 바뀌고 있다. 국내 GP들도 국내는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MBK파트너스는 아시아 최대 규모 PEF 운용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최근 순위가 밀리기는 했지만 2017년 세계 26위, 아시아에서는 1위 PEF GP 운용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미국 다이얼캐피털에 지분 13%를 1조3000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10조원 규모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MBK파트너스는 확보한 자금으로 그로스 캐피털 투자로 영역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스 캐피털은 비상장기업의 소수지분을 매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 전문가들도 글로벌 PEF 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로 꼽히는 KKR의 조지프 배 CEO와 최근 사임한 칼라일그룹 이규성 CEO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글로벌 GP와 비교할 때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는 글로벌 90위권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실 대부분의 국내 GP들은 내수용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는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투자기회를 찾는 등 국내시장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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