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산업안전보건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면서 재해율도 낮아졌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처음 시행된 1982년 재해율은 3.98에서 2020년에는 0.57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업무 중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는 비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집계하는 근로자 10만명당 치명적 재해자 수를 보면 한국은 4.6명(2019년)인데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은 1.0명(2015년), 일본은 1.4명(2019년)이다. 우리도 10만명당 치명적 재해자 수를 2명, 나아가 1명대로 낮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의 중대산업재해 감소를 위해서는 기업 규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8년 사고사망자 1662명 중 50인 미만 기업 소속은 49.8%였으나, 2020년에는 882명 중에서 50인 미만 소속이 81.0%까지 높아져 기업 규모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의 산업재해 대응역량은 향상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산업안전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은 기초적 안전 보호구나 설비 지출에 인색하고 전문성도 부족하다. 대기업 사내협력업체들은 원청의 지원으로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고 있지만 '나홀로 중소기업'들은 열악하다. 중소기업의 잦은 이직도 안전문화 저해요인이다. 안전문화가 형성되기 전에 작업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안전에 관심이 높은 일부 중소기업은 의욕적으로 컨설팅을 받았지만 대기업 수준의 안전역량 없이는 할 수 없는 컨설팅 내용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ILO나 유럽연합(EU)에서는 중소사업장 안전문제 접근에서 작업환경 개선(work improvement)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는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외부지원이 필수적이다. 마침 지난해 4월 산안법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책무가 규정되면서(4조의 2)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선 주요 산업별로 중소기업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안전관리자 네트워크를 구축해 워크숍 등을 지원하고, 지역 노조의 안전보건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지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자주 옮겨다니면서 안전문화 형성이 어렵다면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서는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거점(post)을 통해 안전보건의 지속성(flow)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건설플랜트나 조선업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지역·업종 안전문화센터를 설립해서 안전교육과 사고사례 전파, 건강관리도 가능할 것이다.
50억원 미만 중소 건설현장 등 수백만 중소사업장을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자체가 중소기업 노사의 자율적 산재 예방활동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는 향후 한국의 중소기업 중대재해 예방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10월에 발표할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에 지자체가 산업안전을 위해 나아갈 길도 포함되길 바란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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