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구글 등 CEO와 회동
ICT 혁신 공조방안 모색
인텔·ASML과 협력 논의
반도체 산업 선두 다지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저개발국용 신개념 화장실 개발에 협력한 빌 게이츠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과 회동을 계기로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반도체·바이오·5세대(5G) 등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래 먹거리 패권 경쟁과 미국의 반도체·전기차 배터리 제재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사법족쇄를 벗은 이 부회장이 글로벌 인맥 복원 행보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가석방 이후 해외 인맥 줄회동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지난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직후 때마침 방한한 빌 게이츠 이사장과 서울에서 회동한 걸 계기로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에도 한층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돼 형기를 살다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래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글로벌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회동을 갖는 광복행보를 이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미국 4위 이동통신 사업자 디시 네트워크 창업자인 찰리 에르겐 회장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이후 2년 만에 글로벌 회동을 재개했다. 이 부회장은 한국을 찾은 에르겐 회장이 등산 애호가라는 사실을 파악해 북한산 동반 산행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5시간 가량 산행을 하며 일상부터 사업 협력에 대해 폭넓게 대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지난 5월 디시 네트워크와 1조원대 대규모 5G 통신장비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 부회장의 이 같은 글로벌 인맥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11월 5년 만의 미국 출장 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 재가동 채비를 서둘렀다. 이 부회장은 열흘 간의 출장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를 차례로 만나 바이오와 차세대 이동통신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베스트베리 CEO와 12년여간 오랜 친분을 쌓으며 탄탄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이 부회장의 인맥을 활용해 삼성전자는 2020년 한국 통신장비 단일 수출 계약 중 가장 큰 8조원 규모 5G 장기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연쇄 회동해 시스템반도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차세대 소프트웨어·정보통신기술(ICT) 혁신 분야의 공조 방안을 위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재판 걸림돌에도 글로벌 경영 시급
이 부회장의 올해 행보는 주로 반도체 분야에 집중됐다. 각 국이 경제안보 핵심 자산으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선두 지위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30일 방한한 팻 겔싱어 인텔 CEO를 만나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인텔이 재진출을 선언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양산 시기와 능력이 아직 업계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에 물량을 맡길 수 있는 고객사인 인텔과 추후 협력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6월에는 반도체 초격차 전략 실행을 위해 유럽 출장길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 피터 베닝크 CEO를 만나 장비의 안정적 수급을 요청했다.
이어 벨기에에 위치한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반도체 연구소인 imec을 찾아 루크 반 덴 호브 CEO와 반도체 분야 최신 기술과 연구개발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풍부한 글로벌 인맥을 복원하는데 걸림돌도 있다. 현재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관련 재판이 매주 열리고 있어 해외 출장에 제약이 많은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삼성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현지 출장이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재판이 열리지 않는 추석 연휴기간 미국 등 해외 출장길에 올라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를 모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알 만한 해외 주요 기업 최고경영진 대다수와 친분이 있다"면서 "글로벌 인맥을 본격적으로 활용해 사업 확장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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