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물량 부족현상 이어져
일각 NPL 채권값 급등 우려에
"만기 연장, 지속 불가능한 정책"
공급 초과 불가피 전망도 나와
"이미 국가 부도가 시작됐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능하거나 무지하거나 저는 그 무능과 무지에 투자하려고 합니다"(영화 '국가 부도의 날' 중에서)
경기 침체의 시그널로 꼽히는 NPL(부실채권) 투자가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자산가격에 버블(거품)이 가득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만큼 '투자의 시기'가 왔다는 분위기다. 1998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 때도 통했던 투자전략이라는 점도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NPL에 베팅하는 '큰 손'들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유진자산운용은 5092억원(병행펀드 포함) 규모로 조성한 NPL펀드 '유진에스에스앤디오퍼튜니티'를 통해 최근 10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부동산 NPL이 투자대상이다.
NPL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고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회수하지 못한 부실화된 대출채권이다. 부동산 담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있는 담보부실채권 등이다. NPL 전문투자사는 금융사로부터 NPL을 싸게 사들여 구조조정한 다음 높은 가격에 팔아 수익을 올린다. 은행에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을수록 NPL 시장이 커지는 셈이다.
'유진에스에스앤디오퍼튜니티'의 투자자(LP)에는 우정사업본부와 새마을금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현대캐피탈 등이 이름을 올렸다.
국민연금도 NPL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버블에 대한 헤지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은 2018년 NPL펀드 위탁운용사에 파인트리자산운용을 선정, 2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큰 손들의 NPL 투자 움직임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의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 PF는 실물에서 부실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는 지표다. 은행에서 여신을 NPL로 평가하려면 3개월의 시차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증권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4.7%로, 지난해 말(3.7%)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던 2019년 말(1.3%)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다. 연체잔액은 2017년 말 1779억원에서 2022년 1·4분기 1968억원으로 급증했다. 증권사의 부동산 PF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2021년 말 5.9%에서 올해 1·4분기 8.3%로 2.4%포인트 상승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NPL 채권의 금리는 초저금리 당시 법정연체이자 3%를 포함해 5%도 있었다. 현재 액면금리만 4% 이상으로, 중소기업이나 공장 담보물건은 최근 5%까지 올라가는 추세다. NPL에 투자하면 연 7~8% 이상의 이자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경쟁은 치열, 물량은 부족
NPL 시장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국내 NPL 시장은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중심으로 하나F&I, 키움F&I, 대신F&I, 우리금융F&I,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 코레이트자산운용, 아시아F&I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수년째 물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3·4분기 은행권 NPL 매각 공개입찰 물량은 채권원금인 미상환원금잔액(OPB) 기준으로 3998억원에 불과했다. 전년동기(5500억원) 대비 1500억원이나 줄었다.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이 NPL 시장을 왜곡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은행권이 새출발기금 대상 차주의 채권을 캠코에 매각해야 하는 만큼 물량 부족으로 NPL 채권가격 급등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정수 유암코 부사장은 "NPL 투자자 및 투자펀드가 활성화되고 있다. 과거 경험에 비춰 경기 침체로 기업 부실이 생겨나고, NPL이 다수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때문"이라며 "하지만 시장에는 이미 많은 NPL 투자사들이 있다. 물량이 엄청나게 늘지 않는 한 NPL 시장에서 초과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진영재 유진자산운용 대표는 "경기 침체가 예상되고, NPL 물량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공급 초과 상태가 될 것으로 본다"며 "정부의 만기연장 정책은 언젠가는 종료될 것이다.
대출 집행금리도 오르는 추세여서 NPL 채권 물량이 쌓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현수 케이클라비스 사장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경기 하강 등으로 자산가치 상승보다는 이자율 부담으로 고정 이하 NPL 여신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활한 유동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라고 전했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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