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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한계 벗어난 새로운 공공미술 고민해야 [K-스컬프처와 한국미술]

(10) 獨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공공미술

‘조형물’ 한계 벗어난 새로운 공공미술 고민해야 [K-스컬프처와 한국미술]
부르스 나우만 (Bruce Nauman) '역 피라미드'
10년에 한 번 열리는 독일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고작 5회 행사를 했고 조각만 전시함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함께 유럽 3대 미술제로 유명하다. 또한 세계 현대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이 큰 전시이자 이상적인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이 전시를 보러 갔다. 지도를 들고 시내 곳곳에 설치된 작품을 찾아 다녔는데 시작부터 낭패를 보았다. 작품들이 눈에 잘 안 보이는 것이다. 알고 보니 작품이 현실 세계에 섞여 있거나 숨겨두기라도 한 것처럼 전시된 경우가 많았다.

작가 페 화이트는 구시가지에 있는 빵집의 진열장 안에 독일의 전통 제빵 기술로 만든 장난감 밀가루 트럭을 만들어 전시했다. 실제 빵집 진열장에 케이크와 함께 있는 작품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마이클 애셔는 렌터카 회사에서 빌린 캠핑카를 뮌스터 시내의 여러 장소로 이동시킨다. 캠핑카가 실제의 주차장이나 길가에 세워져 있는데다가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만나기 힘들다.

현실 세계에 섞여 있는 조각들을 관람하고 난후 관객들은 일상의 생필품들을 보면서도 혹시 작품이 아닐까 살펴본다. 이 전시는 보통의 삶과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생활 속에서도 미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도록 관객의 미적 체험 영역을 확장시켰다.

부르스 나우만의 작품 '역 피라미드'는 피라미드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땅 속에 만들어졌다. 경사면을 따라 지표면 아래로 내려 갈 때 잘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의 움직임과 더불어 온 몸의 평형감각이 살아나며 함몰된 피리미드 속에서 하늘을 보면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처럼 시각적 낯설음이 경이를 느끼게 한다.

전시 기획자 캐스퍼 쾨니히는 전통적인 의미의 입체 미술 보다는 조각 작품과 공간이 만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향유하는 관람객의 체험에 큰 관심을 둔다고 했다. 뮌스터의 조각들은 우뚝 선 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학자 이브 미쇼가 '기체 상태의 예술'에서 말한 기체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면서 관객이 무엇인가 느끼고 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뮌스터 조각전은 현대 조각의 본질이 재료나 기교가 아니라 새로운 미학의 제시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전 세계의 관객들은 바로 그 개념을 보기위해 기꺼이 이 조그만 도시를 방문하며 그 새로움은 관객에게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한국의 공공미술은 1년에 천여 개씩 만들어지고 있지만 동물 인체 과일 형상의 장식품, 벤치에 하트나 초승달을 결합한 포토존, 물속에 풍덩 돌 던지듯 공공장소에 맥락 없이 세운다는 의미의 플럽아트(plop art) 수준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뮌스터 조각전은 둘째 치고 이런 조형물 형식이라면 공간에 아무것도 세우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수년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간에 민망한 조형물을 넣느니 차라리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게 더 유익하다"고 했던 서울시 공공미술자문단장의 말이 떠오른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부상한 K 콘텐츠의 위상에 어울리는 새로운 방식의 K 공공미술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상투적 미학의 강요와 일방성, 장소와의 비관계성, 시각적 즐거움에 중심을 두는 망막미술 (Retinal art)에서 벗어나 작품이 장소와 관객, 공공성 사이의 관계를 재구축하고 감동을 주는 새로운 미학의 공공미술을 기대해 본다.

전강옥 조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