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배리어 프리' 음악극 합★체
박지리 작가의 동명 성장소설이 원작
실제 장애 가진 배우가 직접 연기하고
통역사 따라붙는 '그림자 수화' 첫 시도
무대 옆 스크린에선 실시간 대사·지문
경계 허물고 진화하는 공연 보여줘
음악극 '합★체'의 배우들과 1:1로 매칭된 그림자 수어 배우가 무대에서 함께 연기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쌍둥이 형제 '합'과 '체'가 농구장에서 드리블을 하자 '합'과 '체'와 같은 옷을 입은 수어 통역사가 그림자처럼 그 둘을 따라 움직였다. 전문 수어 통역사는 '합'과 '체'와 같은 호흡으로 연기하며 무음의 관객에게 수화로 의미를 전달했다. 무대 양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배우의 대사와 지문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DJ역할을 맡은 배우는 무대 위 상황을 그때 그때 해설해 눈을 감고도 무대를 그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국립극장은 지난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무장애(배리어 프리) 음악극 '합★체'의 첫 초연 무대를 올렸다. 김지원 연출은 이번 공연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이던 합체를 무장애 공연 음악극으로 무대화 할 수 있게 기획해준 국립극장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장애를 추구하고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며 "다양한 사람·언어·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이 느끼고 무장애 공연이 하나의 장르가 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극중에서 '난쟁이'라고 불리는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키가 작은 두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드라마다. '합'과 '체'는 계룡산에서 도를 닦는 '계도사'의 말을 듣고 계룡산에서 키가 크기 위한 33일의 수련을 하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합'과 달리 '체'는 행동파다. 체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작은 키를 놀리는 친구들에게 키가 크는 '혁명'을 하고 싶다는 이유다.
작품은 "좋은 공이 가져야하는 조건, 그중 제일 중요한 건 공의 탄력도"라는 아버지의 대사처럼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키가 작은 영웅의 대명사 나폴레옹을 두고 "땅에서부터 키를 재면 가장 작지만, 하늘에서부터 재면 가장 크다"는 말처럼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합★체'는 음악극의 특성을 살려 공연 중간 중간 무대의 뒤편에 있는 악단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준다. 클래식, 재즈, 왈츠, 힙합, 팝 등 다양하다. '합★체'는 무장애 공연을 형식적으로 내세운 공연과 달리 현재 가장 적극적인 무장애 공연으로 평가 받는다. 배우와 함께 움직이는 '그림자 수화'는 최초의 시도였다. 저신장 아버지를 연기한 김범진 배우는 실제로도 저신장 장애를 가지고 있다. 수어 번역에는 실제 농인 당사자가 참여했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시각·청각 장애인은 물론 이동이 불편한 관객을 위해 휠체어석을 마련하고 공연장에서도 안내를 진행했다"며 "장애인을 위한 전용 공연을 만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비장애인과 경계를 나눈다는 오해도 있다. 공연마다 시각,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공연이 있고 사전에 접근성을 안내해 준다"고 설명했다.
음악극 '합★체'는 화려한 배우와 많은 자본을 투입해 만든 초대형 뮤지컬과는 또 다른 맛이 났다. 도시락 반찬으로 치면 달고 짠 자극적인 '햄'과 달리 단백하고 슴슴해 건강한 '두부' 같은 느낌의 공연이었다. 4일간의 공연 동안 객석 점유율은 83%, 장애인 관객 할인 관람비율은 7%였다.
국립극장은 오는 11월 17일~20일 달오름극장에서 무장애 연극 '틴에이지 딕'을 무대에 올린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각색한 미국 극작가 마이크 루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장애 때문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체적 특성까지 이용하는 리처드의 이야기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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