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정치학의 대가 후안 린츠 전 예일대 교수는 '대통령제의 실패(Failure of Presidential Democracy)'라는 저서에서 내각책임제에 비해 대통령제는 몇 가지 단점이 발견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내각제에서는 정치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정치인이 총리를 맡게 되는데, 이와 달리 대통령제에서는 정치경력이 전무한 비정치인도 단번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특성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민이 정치권 자체를 불신하고 노회한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낄 때, 기성정치에 때 묻지 않은 아웃사이더를 국가 최고지도자로 선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선택의 폭을 비정치권으로 넓힐 수 있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제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아웃사이더 대통령의 임기는 대부분 실패로 점철된 경우가 많다.
1970년대 미국 정계를 강타한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미국 국민은 1976년 대선에서 땅콩농장을 운영했던 조지아주의 초선 주지사 지미 카터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도덕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아웃사이더 카터는 호인이었지만, 역사는 그의 대통령직 수행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쟁쟁한 공화당 예비후보를 모두 물리친 후, 본선에서 워싱턴 '핵 인싸(인사이더)' 힐러리 클린턴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중산층의 붕괴와 저소득층의 고충에 수수방관하던 정치권에 대한 반발이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트럼프지만, 그의 대통령직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린츠 교수는 대통령제의 경직성도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내각제의 총리는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본인이 능력을 발휘하고 국민이 인정하면 10년을 훌쩍 넘기며 총리를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능하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지도자는 살벌한 정치판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종의 희소재(稀少材)다. 정해진 임기 후 용도 폐기하기보다는 오래 사용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독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콘라트 아데나워, 엄마(mutti) 리더십으로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은 앙겔라 메르켈,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모두 10년 이상 장수 총리를 지내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반대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처럼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국민의 지지가 반등할 기미가 없으면 총리 자리에서 빨리 내려와야 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유·무능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선출되고 나면 일정 임기가 보장된다. 탄핵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중대한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대통령의 탄핵은 매우 이례적이다. 따라서 무능한 대통령도 임기를 꾸역꾸역 채울 것이고, 유능한 대통령이라도 일정 임기 후에는 용도 폐기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특성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내각제에서 총리가 자주 바뀌면 정치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자리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아웃사이더가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함량미달로 판명 났는데도 짧지 않은 임기를 다 채워야 하는 상황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 될 수 있다.
■약력 △56세 △예일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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