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투자 한계에 민간 모펀드 육성제안
BDC로 '개미'에 비상장 투자 길 연다
[파이낸셜뉴스] 토종 모험자본을 육성해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을 지키는 방안이 나왔다. 기존 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처럼 정책펀드 기반을 넘어 민간 모펀드(fund of funds) 육성이다. 국내 18개의 유니콘이 국내 VC(벤처캐피탈)의 초기투자 후 다수 해외자본에 의존했던 것에 대한 대안이다. 국내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의 상장으로 '개미'로 통칭되는 개인투자자들이 비상장사에 투자를 할 수 있고, 혁신기업 성장의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민간 모펀드·BDC로 모험자본 공급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3일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인해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모험자본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해 민간 모험자본 유입을 통한 혁신기업 스케일업이 필요하다"며 "민간 모펀드(앵커펀드)와 국내 BDC의 조속한 입법과 기존 벤처투자기구에 상응하는 세제혜택 제공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민간 앵커펀드의 재간접투자 구조에 따른 이중 운용보수를 상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세제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금, 공제회, 재단, 법인 등 출자자(LP)를 대거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목표 중 하나인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구현을 위한 변화에 일맥상통한 방안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1층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국내 민간 모험자본 공급 구조를 고려한 세제혜택, 동일 수준 모험자본 투자위험에 대한 동일 수준 세제혜택으로 앵커펀드 및 BDC의 성장을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국내 모펀드는 정책출자 비중이 30%로 높은 편이고, 펀드규모가 평균 300억원으로 영세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안은 미국 대비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 기관의 후속투자와 연관 깊다. 미국 기관은 후속투자 비중이 2013년 85.1%에서 2020년 91.1%로 기업의 성장을 투자에서 꾸준히 도왔다. 반면 한국은 동일 기간에 53.2%에서 66.4%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스타트업이 대형 혁신기업으로 성장하기에 투자로서 지원이 부족함을 방증한다. 해외의 유니콘 육성 투자는 전통적 VC 뿐만 아니라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국부펀드, 자본시장 크로스오버 투자자(자산운용사,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등 민간 모험자본이 대거 참여한 것이 주효했다.
국내 VC의 자금모집 및 신규투자가 위축세로 돌아선 것도 민간 지원책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국내 VC의 자금모집은 올해 1·4분기 2조1000억원에서 2·4분기 1조9000억원으로 7.6% 줄었다.
BDC 투자자에 기존 벤처투자기구에 상응하는 세제혜택도 필요하다고 봤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책목적 달성과 이해상충 최소화를 위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경도 DS자산운용 본부장은 "성공적 국내 BDC 출범·운용을 위해 주요 운용전략 검토가 필요하다. 잘되는 BDC를 키우는 것이 업계의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사모펀드(PEF)를 통한 모험자본 공급기능 강화도 중요해 벤처기업 투자 관련 세제 등 제도적 보완사항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승욱 벤처시장연구원 대표는 "BDC와 민간 모펀드의 정착을 위해서는 세제혜택, 규제완화 등 매력적인 민간투자자 유인방안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정근호 스틱벤처스 대표는 "국내 BDC의 상장을 통해 환금성이 부여되는 만큼, 일반 개인투자자들의 자산운용의 한 측면으로 비상장사 투자에 대한 제도적 참여의 길이 열렸다. 개인투자조합과 VC펀드와 동일한 세제혜택이 부여돼야 한다. 상장펀드의 유동성 유지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비상장기업 투자 및 매매에 대해 공시기준도 일부 완화할 필요가 있다. 대출운용시 CB(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BW), Venture-debt(벤처대출)과 같이 주식으로 투자할 수 있는 옵션 등도 같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제혜택은 재정지원..정책자금은 미래 동력에 투자해야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도 도입 후 시장질서 관리와 정립을 통해 비상장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 시장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성숙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영구적인 세제혜택이 해결책으로 나오는 것은 불편하다. 정책자금은 배달의민족, 마켓컬리 등 비상장사를 위해 투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 성장 동력과 연관된 부분인 에너지, 로봇 등에 투자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은 "세제혜택은 재정지원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내에서 설득이 되려면 국가 발전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PEF 진입정책과 관련 현재의 등록제에서 투자자 유형에 따라 등록제와 인가제를 분리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등록제 전환 이후 과다경쟁이 나타나서다. J커브 효과(투자 초기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현상)가 있는 사모펀드 운용업의 특성을 고려해 자본금 요건을 상향 조정하고, 혁신경쟁에서 낙오한 경우 즉시 퇴출될 수 있도록 퇴출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다만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 후 사모펀드 생태계 전반의 혁신 활력이 저하되고 있는 것을 고려해 파생상품 위험평가방식의 개선, 재무적 투자 목적으로 지분 10% 이상 보유한 사모펀드의 경우 15년 내 처분 의무 조항 예외 인정, 실물 투자 속성에 적합한 SPC 선택이 가능하도록 선택권의 확대 등을 제안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300조원을 상회하는 퇴직연금이 다층연금체계 하에서 노후소득보장의 한 축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적립금의 운용 수익률 제고가 필수적으로 봤다.
이를 위해 추진되는 각종 제도적 개편과 운용규제 완화는 자산운용시장의 건전한 경쟁구도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렬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연구원은 오는 11월 3일 '자본시장의 공정성 제고'를 주제로 제3차 릴레이세미나가 개최한다. 11~12월 중 제4차 릴레이세미나에서 '자본시장의 국제적 정합성 제고'를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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