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헌법상 기본권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다양한 의견은 창의성의 발현이며, 잘 차려진 풍요로운 밥상과 같다. 다양성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요체이고, 비판이나 불이익을 무릅쓰고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기소된 고영주 변호사의 대법원 판결문의 일부이다. 새삼 판결문을 찾아본 것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모욕죄'로 고발한 장면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해 바람직하지 않은 조치라 생각한다. 김 위원장 의견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이고, 경사노위 위원장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게 적절했는지 여부와도 다른 문제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그의 개인적 의견이다. 김 위원장이 고 신영복 교수를 잘 아는 처지라 해도 신씨를 존경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는 결론의 사실 여부를 증명할 수는 없다. 판결문에는 "사람이나 단체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외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성질상 그들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증명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대목도 있다.
걸핏하면 정치적 문제를 사법부로 가져가는 행태도 옳지 않다. 대법원은 이 점도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공방의 대상으로 된 좌와 우의 이념문제 등은 국가의 운명과 이에 따른 국민 개개인의 존재양식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쟁점이고 이 논쟁에는 필연적으로 평가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하여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에서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본질상 정치적 공방에 관한 문제 아닌가. 경사노위 위원장에 대한 질문으로는 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기왕 시작했다면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잘못된 인식에 대한 승복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적어도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했어야 한다. 윽박지르고 고함치다가 고발부터 하고 보는 것이 국회의 권위를 세우는 일은 아니다. 판결문에서 보듯, 사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할 가능성이 높아 실익도 없을 것으로 본다.
대법원 판결문은 마치 이번 사건을 염두에 둔 듯 핵심을 찌르고 있다. "어떤 표현이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인 경우…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
정확한 논증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 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이 그대로 '김일성주의자' 공방에 대한 답안지가 아닌가. 형사처벌로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민주적 대응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주적 공방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모두 판결문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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