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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조각에 침투한 대중문화, 진부한 사물을 진보한 예술로 [Weekend 문화]

K-스컬프처와 한국미술
(15) 대중문화와 한국 조각의 미래
대중의 기호 수렴한 유쾌한 조각
접근 문턱 낮췄다는 평가 더불어
미적 가치 깎아내린다는 지적도
이제는 '불편한 무엇'도 말해야

현대 조각에 침투한 대중문화, 진부한 사물을 진보한 예술로 [Weekend 문화]
김택기 '바이올린 연주자'(2013)
20세기 중반 이후의 조각은 대중문화를 서슴없이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안는다. 1960년대 영미권의 '팝아트'나 유럽의 '누보 레알리슴'이 대표적이다.

앤디 워홀은 1964년 대중에게 익숙했던 '세제를 담은 브릴로 박스'와 똑같은 모양의 나무상자를 만들어 개인전에 전시했다. 슈퍼마켓에 있던 상품과 전시장에 있는 예술작품 사이의 '식별 불가능성'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 이 작품은 우리에게 팝아트까지의 예술과 팝아트 이후의 예술을 구분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팝아트 이후의 미술은 '일상 사물이 곧 예술'이 되는 수많은 경우를 낳으면서 이전까지의 '일상과 달라서 가능했던 예술'의 위상을 변모하게 했다.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는 일상의 흔한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만든 조각으로 유명하다. 우리에게 청계천 입구에 설치된 다슬기 모양의 조각인 '스프링'(2006)으로 친숙한 그의 작품은 미국 필라델피아 시청사 앞에 우뚝 선 거대한 '빨래집게'(1976)나 독일 쾰른의 한 쇼핑몰 옥상에 설치한 거대한 아이스크림 모양의 '떨어뜨린 콘'(Dropped Cone, 2001) 등을 통해 일상의 진부한 사물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누보 레알리슴 계열의 작가였던 아르망의 작품은 또 어떤가. 그는 투명 박스 안에 쓰레기를 모아놓은 '쓰레기통' 연작이나 일상 용품을 무수히 쌓아 올려 만든 '집적' 연작을 통해서 일상의 사물을 한데 모으는 아상블라주(assemblage) 기법을 통해서 일상의 사물이 곧 예술이 되는 가능성을 다양하게 실험했다. 프랑스의 한 마을에 60대의 자동차를 콘크리트와 혼합해서 쌓아 거대한 탑을 만든 '장기 주차장'(1982)이 대표적이다.

동시대는 또 어떠한가. 제프 쿤스의 작품 '풍선 개'(Ballon Dog, 1994~2000)는 막대기 풍선이라는 사물을 예술 작품으로 둔갑시킨 새로운 버전의 팝 조각을 선보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서구의 팝아트와 누보 레알리슴의 유산이 힘을 발휘해 대중문화를 화두로 일상과 예술을 한 자리에 만나게 한다. 1980년대는 민중미술에서 서구 팝아트의 유산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혼성한 유형이 등장하기도 했고, 1980~90년대 '우리 것의 모색'이라는 화두 아래 민화(民畵)와 연동한 다양한 유형의 '코리안 팝아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의 포스트 팝 경향은 대개 회화의 영역에서 활성화된 것이지만, 조각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은 대개 아상블라주와 오브제 아트를 통한 네오다다(Neo-Dada)의 형식적인 조형 언어와 더불어 하위문화가 낳은 오타쿠(otaku), 키덜트(kidult)의 심리나 매스 미디어가 야기한 대중문화의 온갖 내용이 맞물려 이루어진 것이었다.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맞닥뜨린 조각은,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경계의 전이를 넘어 미디어가 창출하는 연예인, 대중스타와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넘실대는 혼종의 무엇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극단의 대중문화 접목은 대중에게 조각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면모도 지니지만, 대중의 기호에 편승해 조각의 미적 가치를 폄하시킨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오늘날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생산되는 대중문화는 사탕처럼 달콤한 대중적 아이콘 이미지와 콘텐츠를 예술의 형식으로 변주함으로써 조각의 작품 세계를 빈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친 대중주의에 매몰된 조악한 조형의 공공조각이 도처에 우후죽순으로 세워졌던 시대를 생각해 보라. 공공조각의 사전 평가를 제도화한 요즈음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대중의 기호에 발맞춘 공공조각이 완전히 개선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대중문화를 반영하는 현대 조각은 엘리트 순수 예술과 차별을 선언하면서 대중의 취미에 부합하는 팝적 기호에 매몰되기도 했지만, 제도권으로부터 떨어져 있던 변두리 문화와 저급으로 취급받았던 B급의 소수 문화를 중심으로 견인하는 역할도 도맡아왔다. 21세기 쌍방의 미디어 공론장의 시대에, '대중문화를 수렴하는 한국 조각'은 이제 위장된 엄숙주의를 유쾌하게 해체하는 것을 넘어서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마저 드러내는 '불편한 무엇'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성호 미술평론가·APAP7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