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시야 제로, 한국 현대조각의 시장성
지난 5년 낙찰가 톱20 입체작 8점
그마저 모두 백남준·권진규 작품
큰 호황을 맞았던 국내 미술시장이 최근 들어 크게 위축됐다. 국제 금융시장의 연이은 금리 인상 등의 여러 악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일부 블루칩 작가군 위주로 아직은 건재한 편이다. 이것은 주로 '서양화' 중심의 회화 시장의 이야기다. 순수미술은 흔히 평면작품과 입체작품이 양축으로 불린다. 전통적으로 회화 중심의 평면작품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그렇다면 국내 미술시장에서 입체작품이 차지하는 규모는 얼마나 될까.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2021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자료에 의하면, 낙찰총액 약 3300억원 중에 판화를 포함한 회화 장르가 76%, 입체 장르는 3%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 3% 중엔 백남준 작가처럼 혼합 미디어 작품까지 포함한 수치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현대조각이 차지하는 비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지난 5년간(2018~2022년 9월) 입체작품을 포함한 현대조각의 경매 낙찰총액을 비교해봤다. 국내 경매시장에서 5년간 판매된 입체작품은 약 347억4000만원이었다. 연도별로는 2018년 181억여원, 2019년 28억여원, 2020년 25억여원, 2021년 80억여원, 2022년 9월 현재 26억여원 등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매매된 해외작가 작품까지 포함된 수치다.
백남준 ‘TV is New Heart’
루이스 부르주아 ‘Quarantania’
지난 5년간 국내 경매에서 판매된 입체작품 낙찰가 상위 20순위를 비교해보면 더욱 실감 난다. 낙찰가격이 높은 20순위 중에 국내 작가는 8점이었고, 백남준(5점)과 권진규(3점) 단 2명만의 합산이었다. 여기에서 백남준의 미디어 작품을 제외한 순수 조각작품은 권진규 1명인 셈이다. 낙찰가 20순위 중 해외작가 1위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브론즈 작품 95억여원이었고, 국내작가 1위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6억여원, 권진규의 최고가는 3억4000만원이었다. 해외작가 상위 3순위 낙찰총액은 133억여원, 국내작가 상위 3순위는 12억7000만여원이었다.
객관적으로 노출된 통계 자료인 국내 경매시장 현황만으로 볼 때, 현대조각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존재감이 없는 셈이다. 여러 채널로 K콘텐츠에 이어 K아트 바람도 일으키려고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다. 일명 K팝이 한류 바람을 견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곳보다 든든한 국내 지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팬덤이 시장을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국 현대미술 시장에서 과연 현대조각의 존재감은 있는가를 냉철하게 되짚어볼 시점이다.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지속시키려면 무엇보다 '건강한 시장 생태계' 조성이 급선무다.
그 시장의 첫 번째 주인공은 당연히 창작자(생산자)인 작가일 것이다. 되짚어보면 한국 현대조각에 대한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것은 '작가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의 정책'을 우선했기 때문은 아니었나 자성해 볼 문제다.
경제 논리를 앞세운 공공미술 시장이나, 프로젝트성 이벤트를 양산하는 것 못지않게 작가 개인의 지속적인 역량 강화에 주력해야만 한다. 이미 어려운 시절을 스스로 이겨낸 원로작가나 작고 작가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현역작가에 대한 관심과 지원책을 다방면으로 고려해본다면 한국 현대조각 시장성의 시야도 점차 밝아지지 않을까.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