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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블라인드 채용 폐지가 가져올 인재확보

[특별기고] 블라인드 채용 폐지가 가져올 인재확보
지난달 28일 국가 과학기술 최상위 컨트롤타워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책이 공식화됐다. 12대 첨단기술에 5년간 총 25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12대 국가전략기술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 호의 미래를 이끌 성장엔진들로 손꼽혀 왔다. 하지만 그간의 요란했던 전망과 구호를 걷어내고 민낯을 들여다보면 다소 당혹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양자 분야 투자전략에서 미국이 12억 달러 규모의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에서는 이미 150억 달러의 투자가 거듭돼 온 마당에 한국이 책정한 예산은 고작 3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새 정부의 도전적인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책이 그래서 더 반갑다. 내년 국가연구개발 예산 30조원 중 75%의 비중을 전략기술들이 차지한다. 절대적인 금액에서 열세인 우리의 예산을 감안하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과 자원 배분이 필수적이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두 거물 삼성과 TSMC마저도 줄을 세우며 '슈퍼 을'로 군림하고 있는 노광장비 공급업체 ASML이 좋은 사례다.

기존의 판을 뒤엎는 접근 방식도 고려대상이다. 해외 연구팀들이 대형설비와 막대한 에너지 투입이 불가피한 초저온 양자컴퓨터에 매달리는 동안, KIST는 실온에서 동작하는 양자컴퓨터에 집중해 왔다. 보다 새롭고 혁신적인 우리 기술로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퓨처마킹(Future Marking) 전략에 따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팀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국가전략기술은 개인 연구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KIST는 이미 수년 전부터 도전적인 연구를 팀 연구에 기반한 문화로 달성해왔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그랜드 챌린지, 세계 최고 수준의 K-LAB 같은 신규 사업들은 모두 팀 연구가 필수이다.

그간 블라인드 채용은 이런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연구팀 구성의 큰 걸림돌이었다. 연구팀의 일원을 뽑는다는 것은 포스닥까지 마친 동료 연구자를 뽑는 일이다. 하지만 지원자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공동연구를 했는지, 또 연구에 대해 어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등 자세한 배경을 알 수 없다보니 논문 개수 같은 정량 평가로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불완전한 정보를 확인하려다보니 행정력 낭비도 심했다. 과정의 공정성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문성과 잠재력은 물론 비용과 시간까지 희생시킨 제도였다. 우리 과학기술계가 정부의 12대 국가전략기술 투자계획만큼이나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을 환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