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사 10년차인 회사원 김모씨는 올해 처음으로 고깃집이 아닌 색다른 곳에서 연말 회식을 했다. 올해는 수제맥주를 파는 펍에서 회식을 진행해 '소맥' 대신 각자 원하는 수제맥주를 골라마실 수 있었다. 소맥이 없으니 파도타기도 사라지고, 건배사도 사라졌다. 2차, 3차까지 가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1차에서 끝나니 오후 9시에 지하철을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김씨는 "택시비도 비싸진 마당에 연말 회식에 대중교통으로 집을 간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만족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진행할 수 없었던 연말 회식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가운데, 예전과는 다른 회식문화들이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전보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자율성이 확대되는 것이 핵심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연말 회식으로 저녁 대신 점심 회식을 택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 중구의 직장인 박씨는 "올해 송년 회식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호텔에서 식사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면서 "저녁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되는데다, 점심에 진행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돼 모처럼 즐거운 회식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저녁회식이 줄어들면서 연말특수를 누리던 고깃집이나 맥주집들의 매출은 줄어들고 있다. 강남에서 맥주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원래 12월에는 밤 늦게까지 길거리를 배회하는 무리들이 많았는데, 이제 9시만 넘으면 거리가 한산해지는 느낌"이라면서 "주로 2차 장소로 가던 호프집이나 주점 등은 연말인데도 텅텅 비어있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고 전했다.
바뀌는 회식문화에 당황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 15년차 직장인 최모씨는 "우리 때는 당연히 막내가 고기를 구웠는데 아무도 구울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내가 구웠다"면서 "막내한테 시키기엔 꼰대스러워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순간 '내가 호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 회식부터는 완성된 요리가 나오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바뀐 회식문화는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최근 오비맥주가 실시한 '회식 관련 직장인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식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으로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 것'(61.4%)을 1순위로 꼽았다.
가장 바람직한 회식 문화로는 '메뉴, 귀가시간, 잔 채우기 등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형 회식'(47.9%)을 꼽았다.
이에 오비맥주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의 서울 6개 지점에 연말 송년회를 앞둔 직장인을 위한 '부드러운 회식존'을 오픈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부드러운 회식존은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껴지는 퇴근 이후 회식이 아닌 일과시간 중 동료들과 간단히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편안하게 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메타, 리복, 에이블씨앤씨, 큐피스트 글램, 키친마이야르, 생활공작소 등 다양한 회사들이 사무실 내에 '부드러운 회식존'을 설치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