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이 장안의 화제이다. 글로벌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뷰 차트에서 공개 직후부터 1위를 유지했다. 재벌가에서 머슴살이하다 그 집안에 배신당해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난다. 재벌가 손자로 윤회해 자신을 죽게 한 재벌 집안에 복수하는 데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며 기업경영과 관련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재벌의 비자금 조성과 정경유착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인 상황에서 그런 문제보다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장치에 관심의 초점을 두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재벌그룹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전문경영인의 역할 설정이 미비하다고 오랫동안 지적받았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재벌의 공과 과가 분명히 있었다는 점이다. 재벌총수가 자회사의 경영간섭을 하지 않는지, 부당한 사익편취를 추구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하나, 가족경영의 해체가 옳고 전문경영인 체제만이 옳다는 양비론은 사라져야 한다.
물론 1971년 해리 레빈슨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가족경영을 망치는 것들'이라는 글을 썼다. 이 대목에서 재벌집 막내아들 제작진의 변이 오버랩된다.
"재벌회사 순양가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오롯한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다. 순양가의 왕좌 앞에서 가족이라는 이름마저 벗어던지기 시작한 이들이 어떻게 서로와 대적할지, 대체 불가의 배우들이 만들어낼 압도적 시너지를 기대해달라."
비즈니스 리뷰에서 가족경영의 문제점으로 제시한 대부분이 순양가에서 나오는 가족 간의 분쟁이다. 해리 레빈슨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옹호했다. 창업자의 가족이 경영권을 행사하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경쟁해 기업 경영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였나 유럽에서는 창업자 이후 200년 넘게 가족경영을 4~5대나 이어가는 기업이 꽤 있다. 가족도 주주로서 경영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진 이후 경영을 맡을 수 있었다. 가족경영 문화를 유지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이탈리아의 대기업 베네통이나 페라가모를 보라. 일본, 대만, 독일 등의 가업승계 기업문화에서는 우리의 정서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능력 있는 후계자가 세계 최고의 상속세를 내고 경영을 승계하는 체제가 꼭 옳은 것인지 반문해 본다. 그게 부자 편에 섰다고 돌팔매질을 당해야 할 일일까. 독특한 지배구조와 이 지배구조를 둘러싼 창업자 가족 간 분쟁 뉴스가 세간의 이목을 끌지만 그게 우리 기업문화의 전부로 인식되는 건 지양되어야 한다. 한국 대기업이 재벌이라는 고유명사까지 만들어냈다고 모든 외국인이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는다. 창업자 가족 중 누군가를 훌륭한 경영자로 성장시킨다면 전문경영인에게 기댈 수 없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도 있다. 돈만으로 살 수 없는 기업에 대한 자부심, 기업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그들에게 깃들여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드라마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순양가를 떠났던 막내가 돌아왔다.
제 아들 진도준과 함께. 그는 한눈에 알아봤다. 막내 손자가 자신을 닮았다는 걸. 승부 근성, 결단력, 가차 없는 냉혹함까지. 현실에는 진도준 같은 기억의 화신보다는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물을 원한다. 불황일수록 그렇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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